내가 요즘 반복적으로 하는 고민은
'나는 왜 친구가 없을까?'
이다.
'왜 나더러 먼저 만나자는 사람이 없을까?'
라든지.
'나는 왜 소속된 무리가 없을까?'
등등의 질문이다.
.
.
사실 이런 것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일인데
요새 들어서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 것만 봐서는
이제 드디어 내가 '관계'라는 것을 원하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내심 기분이 좋기도 하다.
아무튼,
저게 상당히 거슬리는 질문들이니
생각을 좀 해보고 싶다.
초등학생 때,
그러니까 어렸을 때는
참 잘 놀았다.
친구도 무지 많았고,
그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중심에 있었다.
뭐든지 잘 했고 성격도 활달했고
나서기를 좋아했으니.
놀기도 좋아했고.
엄청 놀았지만 공부를 잘 해서
친구들이 항상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공부가 다야'
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언제나 놀 중심이었다.
학원에 가면 친구들이 있으니 놀러 갔다가
선생님이 앉으라니 앉아서
뭐 가르쳐주는데 재밌으니 배우다가
다시 노는.
그런데 14살의 하나는
갑자기 변하기 시작한다.
친구란 부질 없는 것이며
인간관계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냥 몇 명의 친구들만 친하게 지내면 그만이지
친구를 굳이 많이 만들 필요는 없다.
교실에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 들었고
이미 형성된 6명의 무리 이외에는
아무하고도 친구를 하려 들지 않았다.
마음을 열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친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친구들과 중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럭저럭 신나고 재미있는 학창 생활이었다.
매일 오락실도 가고, 같이 공부도 하고.
역시 공부는 잘 했다.
왜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공부가 잘 되고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게
재미있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공부를 핑계로 집에 늦게 들어와도 돼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주말에도 공부를 하면
아버지가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만드는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공부하니까 나가'라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진학을 했다.
중학생 때의 성격과 별반 다름 없었다.
입학 전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도 여전히 조용히 지냈다.
아무하고도 친구가 되지 않았다.
성적 별로 잘라서 우수한 학생들만 듣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내 친구들 중 누구도 같이 듣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혼자였다.
혼자서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짝꿍과 뒷자리 친구들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끼지 못했다.
그렇게 입학을 하고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기숙사에 들어갔는데
역시 난 혼자였다.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었다.
앞 침대 아이도 같이 밥 먹을 사람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서 같이 밥을 먹자고 이야기했다.
그 친구와 또 다른 친구 한 명이서 같이 밥을 먹게 돼서
같이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기숙사에서 나는 점점 친구를 사귀는 법을 배워나갔다.
친구들한테 마음도 열고.
남자아이들과는 전혀 잘 지내지를 못했다.
이야기도 잘 못하고.
잘 놀지도 못하고.
기숙사 여자아이들과는 정말 잘 지냈지만
반 친구들과는 영 잘 지내지 못했다.
반에서는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졸업식 날, 나는 같이 있을 친구가 없었다.
.
.
모두가 나를 좋아한다.
그건 나도 느낄 수가 있다.
'하나 너무 좋아'
'하나 성격 진짜 짱인 것 같아'
'하나랑 친해지고 싶었어'
'하나야 우리 친해지자'
등등
사람들은 나를 좋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묻곤 했다.
'내가 뭐가 그렇게 좋아?'
라고.
.
.
도대체 내가 뭐가 좋다는 걸까?
그리고
무서워졌다.
나의 진짜 모습을 알면
다들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나를 들켜선 안 돼.
.
.
그렇게 나 자신 속으로 숨어 들어 갔던 걸까.
대학생이 되어서
OT에 갔지만
나는 방에 들어가 자고 말았다.
도무지 사람이 많은 곳이 적응이 되질 않았다.
몸이 아파왔다.
다들 앞사람 옆사람 뒷사람과
너는 이름이 뭐니
어디 사니
어느 학교 나왔니
하면서 서로를 알아 가는데
나는 멀뚱 멀뚱 서 있기만 했다.
내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안 심심해요?'
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네'
라고 대답했다.
OT를 가는 버스에서는 옆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급 친해졌던 사람이었지만
집에 가는 버스에서는
인사도 잘 하지 않을 정도로 서먹해졌다.
나는 그렇게
사람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
.
요즘도 그렇게 느낀다.
학교에 돌아왔는데
친구로 느껴지는 사람이 별로 없다.
편한 마음으로 불러내서
수다 떨 사람이 없다.
대학은 원래 이런 걸까.
그런데 또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자기들끼리 잘 노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렇게 무리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왜 무리가 없을까.
다들 자기들끼리 카톡방을 만들어서
수다도 떨고
이따금 같이 놀러도 가고
그렇게 지내는데
나는 그런 친구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유일하게 가장 편한 친구
평생을 갈 친구는
다른 학교여서
서로 바쁘다.
그래서 나는 요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
.
그런데 웃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가 편하다.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싶은데
혼자가 편하다.
사실 불러내고자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불러낼 사람은 있다.
근처에 사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러낸다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불러내고 싶은 마음이 들질 않는다.
왜 그럴까.
그러면서 왜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칭얼대는 걸까.
나는 얼마나 편하고 얼마나 깊은 관계만을 맺길 바라는 걸까.
.
.
나는 그냥 혼자가 편하다.
누구하고 친구인 나
누구의 딸인 나
누구의 누나인 나
뭐 그런 관계 속의 나보다
그냥 오롯이 혼자인 것이 편하다.
관계를 맺으려는 욕심이 없다.
그런데도 또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진다.
도대체 내가 뭘 원하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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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깊이
여기에 대해 파고들어 봐야겠다.
아무래도 '자존감'과 '애착'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
애착.
사랑하는 대상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행동.
그러나 나는 이 개념이 거의 없다.
오히려 멀어지려는 경향이 강하고
언제나 혼자서 있으려 한다.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게
편하지 않다.
그렇다면 왜 편하지 않을까.
익숙치 않아서,
이겠지.
그래서 내가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경험이 부족한 거겠지.
관계에서의 자존감이 부족한 것이다.
애착 이론에 대해서 더 공부해야겠다.
안 그래도 이번 발제가 애착 이론과 관련된 것이다.
관심이 있어서 이 부분을 맡았다.
다음 부분은 자존감을 맡아야지.
심리학 개론 과제도 발달심리학 교재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심리학개론 과제 하는 김에 발달심리학 시험 공부를 하려는
약간의 꼼수도 있기는 하지만
발달심리학 책을 꼼꼼히 읽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아무튼,
또 다시 무언가에 골몰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에 함몰되지 않아서
만족스럽다.
성폭행 사실을 늘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잊어서도 안 된다.
필요할 때만 꺼내서 기억하면 된다.
.
.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실들과 동등하게.
내가 왜 자존감이 부족해졌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성폭행이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 내가 외모를 꾸밀 수 없었다는 것이 큰 요인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친구들이 외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다들 그런 걸 신경 안 썼는데,
친구들이 옷을 사고 머리를 꾸미고 그랬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그런 걸 해주지 않았다.
내가 옷을 사달라고 해도 예쁜 옷은 좀처럼 사주지 않았다.
늘 티셔츠에 청바지.
치마도, 끈 달린 예쁜 티도, 예쁜 신발도
엄마는 좀처럼 사주지 않았다.
당연했다.
엄마 자신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고
자신을 꾸밀 줄 몰랐으니까.
엄마는 뚱뚱했다.
뚱뚱한 게 문제가 아니었지만
엄마는 뚱뚱한 자신을 싫어했다.
그리고 아빠도 뚱뚱한 엄마를 싫어했다.
엄마를 여자로 대하지 않았고
부부 관계도 하지 않으려 들었다.
그래서 엄마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컴플렉스가 심했고
나에게도 '예쁘다'라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너 못 생겼다'라고 말할 뿐이었다.
엄마 친구들이 나를 보고
'어머 딸 예쁘네'라고 해도
엄마는
'뭐가 예뻐. 솔직히 예쁜 얼굴은 아니다'
라고 대답하곤 했다.
엘레베이터에서 거울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못 생겼을까'
'내 머리는 왜 이렇게 곱슬일까'
생각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
이 시기에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나의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찌질한 사람을 보면 친해지기 싫어한다.
여기서 찌질하다는 것은
옷을 잘 못 입고
자신을 꾸밀 줄 모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머리도 곱슬이고
안경까지 끼면 나는 정말 싫다.
왜 그렇게 그런 사람들이 싫나 했는데,
그게 바로 초등학교, 중학교 1학년 당시의 나의 모습이었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늘 바지만 입고
꾸밀 줄 모르는
찌질한 여자아이.
하,
거의 다 내려왔다.
여기다.
이 지점이다.
.
.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사실 초등학생 당시에 나는 성폭행으로 인해
그리 큰 영향을 받고 있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 당시에도 나는 상당히 강했던 모양인지
7살 때부터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 시절에 나는 굉장히 활발한 아이였다.
친구들하고도 잘 지냈다.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는 정말 잘 지냈다.
아예 집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사춘기가 되면서부터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 사춘기 시기를 깊게 파헤쳐 봐야겠다.
많은 열쇠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적 발굴 시작이다.
설레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