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걸 주겠다는데도 안 받겠다는 거야?"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
나 좀 쉴 거야."
"답답해. 너 왜 그래?"
"내가 뭘."
.
.
"왜 더 나아지려고 하질 않는 거야?"
"내가 왜 더 나아져야 하는데?"
"지금이 형편 없으니까!"
"내가 형편 없다고?"
"응. 형편 없어.
온통 검은색 풍선 투성이에
힘 없고
의욕 없고
꿈도 없잖아.
현실에 안주하잖아."
"그래서 너는 내가 형편 없다고 생각하니?"
"응. 그러니까 빨리 더 나아지자.
너도 어서 이 알록달록한 풍선들을 받아.
그리고 나처럼 예쁜 옷을 입는 거야."
"너나 많이 해."
.
.
"뭐가 불만이야 도대체?"
"너야말로 왜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 거야?
그냥 가던 길 가면 되잖아."
"미안해서 그래.
나만 행복해서.
너는 힘들었을텐데
나만 행복한 게 너무 미안해서."
"미안해할 것 없어.
이미 그래버렸으면 앞으로도 계속 그러면 돼.
지금까지 그래와놓고
새삼스럽게 왜 그래?"
"이제 알았으니까.
내가 너한테 나빴다는 거.
같이 겪어야 했는데
너한테만 짐을 지우고 떠나버렸다는 거
이제 알았으니까
반성하니까.
그래서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진짜 미안하면 그냥 나 귀찮게 하지 말고 가던 길 가.
이러는 게 더 싫어."
"내가 밉니?"
"미울 것도 없어.
난 네가 오기 전에는 너라는 애를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제 귀찮고 싫어지려고 해.
그러니까 더 미워지기 전에 가."
"왜 내가 안 미워?
나는 너를 버렸어.
나 혼자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아버렸다고.
너를 구하러 오지도 않았어.
그럼 미워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나는 네가 있는 지도 몰랐다니까?"
"이제 알았잖아."
"네가 도망을 안 갔으면 뭐가 해결되는데?"
"둘이 힘을 합치면 뭐든 할 수 있었겠지."
"그래, 그럴 수도 있었겠네.
그렇게 잘 알면 왜 도망갔어?"
"무서웠어."
"그럼 잘 했어.
넌 도망갔고, 난 안 도망갔고.
선택의 결과일 뿐이야."
"하지만 내가 안 도망갔더라면-"
"네가 도망갔으니까
너는 그렇게 알록달록한 풍선을 얻었겠지.
그래서 지금 나눠주려고 하고 있잖아.
우리 같이 있었으면 아마
둘 다 검은 풍선 밖에 못 가졌을 거야."
.
.
"나를 안 미워 하는 거야?"
"미워할 이유가 없어.
넌 나보다 어른도 아니고
나보다 강하지도 않아.
나를 책임져야 할 의무도 없어.
너는 그냥 네 갈 길을 갔을 뿐이야.
그리고 고맙게도 이렇게 다시 왔잖아.
그런데 내가 너를 왜 원망한단 말이야?
내가 보기에는 너도 나만큼이나 약해보여."
"정말로 나
나 안 미워?"
"자꾸 묻지 말아줄래."
"대답해줘.
나 안 미워?"
"그래, 안 미워.
오랜만에 누구랑 얘기하니까 좋다.
멀리 갔다 왔니?"
"모르겠어. 근데 다시 오는 게 힘들었던 걸 보면
멀리 갔었던 것 같아."
"뭘 그렇게 힘을 들여서 다시 온 거야.
여기가 뭐가 좋다고."
"하나야.
이제 다 끝났어."
"뭐가?"
"우리를 힘들게 했던 것들이 이제 다 끝났어.
그래서 나 다시 돌아온 거야.
너한테 알려주려고."
.
.
"뭐가 우리를 힘들게 했었는데?"
"많은 것들이."
"그것들이 이제 다 끝났다고?"
"응. 끝났어.
그래서 나
이제 괜찮다는 걸 알아서
다시 돌아온 거야."
"그럼 다행이네."
"응, 수고 많았어."
"수고는 뭘.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나, 옆에 잠깐 앉아도 되?"
"다시 안 가도 되는 거야?"
"응, 이제 계속 여기 있어도 돼."
"여기 계속 있는다고?"
"응. 계속 있을 거야,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