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사진을 지워달라고 하면
오빠가 나를 싫어할 것 같다.
와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데도
이런 걱정이 드는 걸 보면
진짜 고질적인 것인가 보다.
대박인 것 같다ㅋㅋㅋㅋㅋ
진짜 깊나봐, 이거.
2.
사진을 지워달라는 게 야만적인 것 같다.
ㅋㅋㅋ이것도
그게 뭐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거라는 건지.
그런 폭력에 하도 노출되어서 그런가봐.
3.
꼬치꼬치 캐물으면 짜증을 낼 것 같다.
이건 엄마가 하도 그래서 그런 거겠지.
4.
내가 지워달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지 모르겠다.
왜 없닠ㅋ
여자친군뎈ㅋㅋㅋㅋ
.
.
이 네 가지 생각 모두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보고 느낀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엄마는 늘 아빠에게 잔소리를 했다.
질투를 했고,
의심을 했고
구속을 했다.
아빠는 늘 짜증과 신경질을 냈고
엄마를 무시했고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간섭하고 속박하는 여자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그런 인식을 갖게 된 것 같다.
뭔가를 요구하면
미움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무섭다.
.
.
이게 합리적인 두려움일까?
아니다.
내가 며칠동안 들은 피드백을 모두 적어보자.
내가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건 아니다.'
라고 대답했다.
믿자.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페이스북에 전 여자친구 사진이 있다는 것은
어떤 여자가 봐도 화가 날 일이다.
모두 화를 냈다.
이게 뭐냐고.
그렇다면 나도 화를 내도 된다.
그리고 오빠에게
'지우라고 해라'
고 이야기했다.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거라고.
지워야 하는 거라고.
이건 상대방, 그러니까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닌 거라고.
왜 안 지웠는지 당당하게 물어보고
지워달라고 하라고.
혜수언니, 다솜언니, 진아, 혜지언니, 새힘언니 모두 똑같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맞는 거다.
나는 지금 엄마처럼 찌질하게
질투하고 구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아니어도
충분히 사랑받는 사람이어도 할 수 있는 요구를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당연한.
정당한.
그러니까
오빠가 짜증내고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못나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맞다, 그거다.
나는 잔소리하는 여자
질투하는 여자가 늘 못났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왜냐하면 아빠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은연중에 나도 그 평가를 받아들였던 것 같다.
.
.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
오빠를 구속하고 있지도 않다.
연락도 잘 하지 않고
무얼 하는지 간섭하지도 않는다.
충분히 자유를 주고 있다.
그런데 페이스북에 전 여자친구 사진이 떡하니 있는 것은
누가봐도 기분 나쁜 일이고
실제로 나 역시도 기분이 나쁘다.
나는 충분히 기분 나쁠만 하고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물론 나쁘게 표현할 필요는 없다.
어쨌든 나는 오빠가 전 여자친구 분에게 무슨 감정이 있어서
그 사진을 남겨놓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몇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첫 쨰,
지우는 방법을 모른다.
타임라인에서 숨긴 것이 다 지운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이럴 것 같다.
그러니까 그냥 믿고
사진첩에도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지웠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 된다.
사실 나는 사진이 추억이고
그 글마저 추억이라는 것을 알기에
지우라고 하기가 가슴이 아프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불편하고,
중요한 것은 그 불편함이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만약 그냥 조금 불편하기만 했다면
내 성격에 절대로 지워달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추억으로 남겨두라고 했겠지.
그런데 나는 사진첩도 자주 들어가는 편이고
페이스북도 매우 자주 하는 편이라서
매우 그 사진을 자주 보게 되고
그러면 기분이 상하고
오빠의 과거에 대해서 궁금해 하게 된다.
나는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우리 관계에도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전 사람과의 흔적은 정리를 해줬으면 좋겠다.
.
.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이다.
그리고 오빠는 들어줄 것이다.
만약 들어주지 않는다면
들어주게끔 하면 된다.
들어주게끔 설득을 했는데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화를 내고 싸우면 되고
싸웠는데도 되지 않는다면
아마 이건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그 책임은 오빠가 지게 되는 거겠지.
어쩄든
경험상 이런 것은 빨리 이야기하는 편이 좋다.
또 미뤄뒀다가는
눈덩이처럼 불어서 다가오기 때문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눈 딱 감고 이야기하자.
그냥,
사장님한테 엠티 간다고 이야기할 때를 떠올리면 되.
이야기하기가 참 무섭고 힘들어서
미루고 미루고 미루지만,
만약에 엠티 간다는 이야기를 못 했다고 생각해봐.
그럼 엠티를 못 가는 결과가 발생을 하겠지?
그렇기 때문에 눈 딱 감고 이야기하는 거잖아?
이것도 마찬가지야.
당장의 데드라인은 없지만
분명히 이건 문제가 된다고.
정말이야.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
그러니까 오빠랑 더 잘 지내려면
이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해.
안 그러면 진짜 결과는 자명해.
눈덩이처럼 불어날 거야.
제발,
그냥 눈 딱 감고 이야기하자.
사장님한테 엠티 간다고 이야기할 때
'지금 놀러간다고 빠진다는 거야? 그건 안돼'
라고 이야기할 까봐 며칠을 전화를 못하다가
겨우 전화해서
엠티 간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래 알았어'
라고 의외로 간단하고 좋게 대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내가 사진을 지워달라고 하면
오빠가
'너는 뭘 그런 걸 신경써'
'너 이런 앤 줄 몰랐다'
'쿨한 애 아니었어?'
'지우기 싫은데'
라고 반응할 까봐 이야기하지 못하는 거다.
하지만 분명
'미안해, 지울게'
라고 이야기할 거야.
그러니까 이야기해보렴.
그리고 중요한 핵심이 하나 있지.
내가 전 여자친구 사진을 지우라고 할 만큼
오빠를 좋아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지, 하나야?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거고.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오빠는 내가 지워달라고 하면 좋아할 거야.
내가 뭔가를 처음으로 요구한 거니까.
뭔가를 바라게 된 거니까.
응응.
그렇게 관계를 만들어나가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