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시드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나요? - 황경신
그녀는 꽃을 무서워했다. 곤란한 일이었다. 더욱 곤란한 것은,그녀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날, "어떤 선물 받고 싶어?" 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역시 꽃이 좋겠어" 하고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곤 했다.
꽃집 앞을 지날 때면 그녀의 발걸음은 한없이 느려졌다. 한겨울의 하얀 장미와 이른 봄의 프리지아, 한여름의 백일홍과 해바라기, 서늘한 가을 저녁의 소박한 구절초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이래저래 한다발의 꽃을 한아름 안고 돌아온 날에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제 시드는 일만 남았어"
짧으면 하루에서 이틀, 길면 일주일. 그리고 꽃은 볼품없이 시든다. 빛을 잃고 향을 잃고 목이 꺾이고 자태가 무너진다. 그녀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꽃의 시체를 서둘러 휴지통에 쳐박는다.키가 큰 꽃들은 그녀의 떨리는 손에 의해 구겨지면서 마지막 저항을 하듯 날카로운 상처를 남긴다. 그녀는 가시에 찔린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두 번 다시 꽃이 시드는 꼴은 보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꽃을 외면하기에는, 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딱히 꽃에 관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도 아름답고 환하게 피어난 꽃이 무의미하게 시들어 갈때마다, 사랑에 대한, 사람에 대한, 미래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꽃 포비아' 라는 그럴듯한 말을 지어낸 누군가는 그녀에게 화를 냈고 또 다른 이는 충고와 위로를 건넸다. 하지만 꽃을 사지 말라거나 꽃을 무서워하지 말라는 말은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도움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어느 날 갑자기 그녀에게 도착했다.
'꽃병 속에 꽂힌채 시들어가는 백일홍을 관찰해보라'
그의 편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황홀하던 빛이 섬세해지고 지쳐 부드럽게 바래가는 모습을 보라. 오렌지색에서 노란색으로, 다시 회색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라. 지친 꽃잎의 가장자리에 주름이지는 모습을, 고개를 떨어뜨리는 모습을, 호소하는 듯 슬픈 빛을 띤 붉은 잿빛을, 낡은 수채화의 빛깔을 보라. 꽃잎 뒤의 그늘을 보라. 꽃들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잃어버린 색들을 보라.'
그녀를 찾아온 각성은 낮고 조용하고 은밀한 것이었다.
피어남과 시듦, 만남과 헤어짐, 시작과 끝, 존재와 부재, 생명과 죽음, 즉 '여기' 에서 '저기'로 나아가는 과정, 그 '사이'의 시간으로부터 자신은 그토록 소외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하여 그 모든 것들이 두려움으로 몰아닥쳤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다. 시작이 두려웠던 건 끝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이 힘들었던 건 내일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꽃이 시드는 것, 장밋빛이 밝은 잿빛으로 변하는 모습을온갖 생명과 모든 아름다움의 비밀을 생생하게 체험하라.'
그의 편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끝을 향해가는 시간 속의 비밀을 상상하자 굳어있던 그녀의 심장이 조금씩 꿈틀 거리기 시작했다.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야. 그녀는 생각했다.
하나의 계절이 왔다 가는 일도, 하나의 사랑이 솟아났다 스러지는 일도, 생명 혹은 죽음 그 자체도.
* 본문 중의 편지는 헤르만 헤세의 편지에서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