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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역사를 보는 눈   치유일지
조회: 2979 , 2014-02-21 13:34



고등학교 국사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셨다.

가르쳐야 하는 내용은 정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역사를 읽는 눈과

균형잡힌 역사관을 가르쳐주시려고 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나는 교과서가 하는 말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중학생 때까지는 교과서가 '진리'라고 생각했다.

교과서에 나온 것은 다 사실이며,

내가 반박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하지만 그 국사 선생님께서는 교과서를 설명해주시다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교과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말씀해주시기도 하시고,

자신의 견해도 말씀해주시면서

교과서의 문장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또한 역사는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록'이라는 깨달음도 주셨다.


그 전까지 내가 생각하는 역사는 역사책에 기록된 것에만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역사 책에 나오는 것은 1%에 대한 이야기다.

나머지 99%도 분명히 역사 속에 존재했고,

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고.


일례로,

독립운동에 대해서 배울 때,

교과서에서는 적극적인 독립운동들에 대해서 소개했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다고 생각했고,

이렇게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는데 어째서 일본이 전쟁에서 패할 때까지

독립할 수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내 의문을 어느 정도 풀어주었다.

교과서에 나온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뒤엔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산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있다고.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식민지배에 순응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 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독립운동을 했다고 생각했을까?

지금만 보더라도,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건데.

사람 사는 세상은 언제나 비슷한데.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역사를 볼 때는 그 당시의 맥락에서 보아야만 한다고도 하셨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당시의 사건들이나 상황들을 판단하기 전에

그 때 그 장소, 그 시간, 그 자리, 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예를 들어,

삼국 시대 때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통일을 이룬 것을 두고

지금의 입장에서 본다면


'외세의 힘을 빌려 통일을 한 게 정당한가?'

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만,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신라, 백제, 고구려가 한 민족이라고 여겨지지만

당시 신라에게는 고구려든 백제든 당이든 똑같이 '다른 나라'였을 뿐이라고.

지금이야 한반도가 통일이 되었지만

삼국시대에는 각기 다른 나라였기 때문에

신라의 입장에서는 모두 다른 나라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크게 수긍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얼마나 지금의 우리 입장에서 역사를 보는 것에 익숙한가.




.

.



당시의 맥락에서 보기.

나 자신의 역사도 그렇게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왜 13살 때 이제 곧 내 옷을 벗기려는 아버지를 밀치고

집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했는가?

어떻게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면서도

나머지 6일 동안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활할 수 있었던 걸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절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은 끔찍한 상황이고,

반드시 신고해야만 하며

아버지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해서 내 몸을 함부로 할 수는 없으며

그런 것은 우리 나라는 물론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주 큰 죄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것을 안다.

내가 겪었던 일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설명할 수 있으며

그것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그래서 내가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아버지가 왜 잘못한 거고

어떤 벌을 받아야만 하는 지

안다.




그러나,

그 때도 내가 알았는가?

7살 때도 내가 알았는가?

8살 때는?

9살, 10살, 11살, 12살, 13살, 14살, 15살, 16살, 17살, 18살, 19살, 20살.

나는 알았는가?



몰랐다.

나는 상황을 분명히 보지 못했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지 잘 알 수 없었으며

어떻게 하면 좋을 지도 알 수 없었다.

왜 몰랐는 지는 모르겠다.

배운 적도 없고 누구한테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일까.


어찌되었든 나는 그렇게 살았고,

하루는 강간을 당했지만

나머지 6일 동안은 그 날에 집중해서 사는 편을 택했던 건 아닐까.


돌아올 수요일에 내가 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면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비겁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을 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그 때는 지금처럼

'나는 지금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라고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아버지 이외에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어본 적도 없었고,

성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하거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었다.

나는 단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책을 많이 읽는 학생이었을 뿐이다.


집에 가면 또 아버지가 나를 만질 게 뻔하지만

학교에 있을 때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게 내가 택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 택한 방법,

즉 아버지에게 대항하고 아버지를 고소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조금 더 일찍 벗어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일어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고

지금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기 때문에.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엄마에게 이야기했고

22살이 되어서야 고소할 수 있었다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지금은 아버지가 나한테 했던 행동들이 무엇인지 잘 알 것 같다.

아버지는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그런 종류의 행위들을 나에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아버지가 뭘 하는 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그저 내 가슴을 입에 물고

내 성기를 입에 물고

자기 성기를 내 질 속에 집어넣고 왔다 갔다 거리고

그러다가 혼자 마구 움직임이 빨라지다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면서 하얀 액체를 쏟아내는.


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지금에서야 나는 이것이 섹스의 과정이며

남자와 여자가 성적 만족을 위해 하는 행위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이 새끼가 도대체 내 위에서 뭘 하는 건지 알 수도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

.


그냥 빨리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란 적이 많았을 뿐이다.




아직까지도 내가 잘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단지 나를 이해하고 싶다.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 이야기를 들어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직 명확한 답은 듣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을 열어놓으려고 한다.

나를 믿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천천히 마음을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었든, 나는 나를 믿고 싶다.

나는 나를 위한 결정을 했으며

어떤 부분에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비극이지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당시의 나는 당시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다.

지금의 내가 원망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했었을 뿐.

그 때 없었던 내가 뭐라고 이제와서 그 때의 나를 욕한단 말인가.



내가 무엇을 선택했든,

나는 나를 믿는다.

그 선택을 받아들일 것이고

그것은 반드시 옳은,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정은빈   14.02.22

하나님덕에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시야가 넓어진거 같아요! 그리고 정말 나를 믿는다는것 당연하면서도 어려운일인데 하나님은 언제나 잘하실거에요!!!! 항상 파이팅이에요!!!!!!

李하나   14.03.01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은빈님도 화이팅♡

誤發彈   14.02.27

상황파악 안되는 것 한가지...
그렇게나 긴 시간동안 엄마라는 사람은 뭐했답니까?
몰랐다면 그게 더 문제고... 단순 방치로밖에 안보이는데...
범죄자인 父보다 母의 방관이 더 문제있어 보입니다.
위의 정황으로만 봐서는...

李하나   14.03.01

음 저도 요즘 그것에 대해 깨달아가고 있어요. 엄마는 언제부터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엄마 역시 피해자일 뿐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서 어쩌면 엄마에게도 책임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걸 깨닫고 있고, 또 그 사실을 감당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중이예요. 슬프게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속은 시원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