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오란 말을 뒤로 하고
당신은 워크샵, 2박3일 교육까지- 내게 연락하나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고,
일이니까, 바쁠 수도 있다고 이해한다.
조금 힘들었다는, 우울했다는 당신을 말을 듣고 다시 이해한다.
광안리 밤바다 사진을 보내주며, 괜찮아, 라는 당신의 말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물리치료를 받고 돌아가는 길인데, 나와서 점심이나 먹을래?
응 지금 나갈께.
근처 산 밑에 생긴 더덕밥집에 들어갔다.
몸에 좋은거라며, 더덕한정식을 거하게 먹고서, 후식으로 나오는 더덕차를 마신다.
따뜻하다.. 맛이 오묘한데? 라며 웃자
당신은 따라 웃으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한다.
교육갔던 이야기. 워크샵에서 있었던 이야기. 출근해서 누구와 싸운 이야기 등등.
완연한 가을 날씨인데 자꾸만 춥다.
볕이 이렇게 따뜻한데 나는 춥다, 추워.. 라며 옷매무새를 추스른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당신에게 애써 웃으며, 근처 절에 갈까?
처음 가보는 작은 사찰.
주차를 하고 한참을 더 계곡을 따라 걸으니 조그마한 절이 나온다.
경내를 한바퀴 걷고,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쐰다.
밤나무 아래 밤송이들이 떨어진다. 도토리들도 톡톡, 바람결에 떨어진다.
잠깐 걸었는데 숨이 차오른다.
그래서 산에 가겠어? 하며 나를 다독인다.
응.. 가야지. 올해는 소백산에 가야지.
복이한테 네 이야기를 했는데.. 설악에 일출보러 오래. 같이 가자던데.
설악에? 복이아저씨한테?
응. 근데 이래서 가겠냐..
가야지. 꼭 가야지.
당신과 미뤄뒀던 여름휴가.-여행-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당신과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쉬이 꺼내지 못한다.
이제, 약속같은것도. 어디 가고싶다는 이야기조차도.
당신에게 부담이 될까, 말하지 못한다.
사람이 아프다보면,
자격지심? 그런게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못하다는.. 일반사람들보다 못 하다는, 그런 생각.
그 생각때문에 내가 짐이 되는 것 같은.
내가 어쩌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나를 놓고싶은데, 내가 아프니까. 안쓰러워서. 불쌍해서.
마지못해 그냥 나를 잡고 있는 것 같은.
나는 그런 생각때문에,
자꾸만, 당신을 놓고싶다.
조금씩, 당신에게 보내던 나의 이야기들을 줄여가고 있다.
당신과 시작하는 하루,
당신과 함께 하는 하루,- 일상 이야기들
당신과 마무리하는 하루.
시작과 마무리는 , 굿모닝과 굿나잇이지만, 하루를 나누지는 않는다.
내 일상과 당신의 일상이 어떤 것도 공유하지 않고
공유한다 하더라도, 공감할 수도 없으며
내 아픈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기때문이다.
머리카락이 자꾸만 빠진다.
머리숱이 엄청 많은 편이었는데, 두 손으로 추슬러 묶기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작은 고무줄 하나로도 충분히 묶인다.
묶여 흘러내려온 긴 머리카락들이 얄팍하다.
차라리 자르면 덜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