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노트북을 켜고 일기를 써본다.
예쁘게 손 일기를 한 편 쓰고 나서도
뭔가 답답함이 남아서 울다에 들어왔다.
역시 타자가 훨씬 빨라서 나도 잘 모르겠는 내 생각을 잡는데는 아주 좋다.
지금의 답답함은 약간의 조급함도 포함하고 있는 듯 한데,
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불확실함으로부터 오는
가벼운 불안,
인 듯도 하다.
내년에는 무얼할까,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할 수 있을 지 확실하지가 않다.
게다가 이제껏 해왔던 활동들이 일시에 종료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휴학을 할 듯 하고,
동아리 회장 임기도 끝났으며(이미 2년 동안 활동을 했기 때문에 내년에 더 할 생각은 없고)
반 년 동안 아르바이트 겸 했던 청소년 사업 활동도 끝나고,
새로 들어간 협동조합도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나오려 한다.
그리고 내년에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하나는
'치유 여행'을 떠나는 일이다.
이것 하나 제대로 해보는 것만이 지금 내 가슴 속에 떠오르는 일인데-
이것 하나만 남겨 놓는 것이 진짜로 이 일을 이뤄내는 일인 지가 확실치가 않다.
즉,
'추진력'의 문제이다.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꼭 그 일을 이뤄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는 데에는 주변 상황도 중요하고
주변 사람도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단체활동들이 모두 마무리 되고
그것 하나만 나의 개인적인 목표로 갖고 있었을 때
일이 잘 될 지 모르겠다.
그래서 약간 고민이 된다.
어떻게 해야 하지?
.
.
일단 8월에 출국은 할 예정이다.
같이 가든, 혼자 가든.
이건 정말 하고 싶은 일이고
내 개인적 상처의 치유이기도 하자
내 진로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성폭력 치유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 이라는.
음,
그러면 이렇게 하자.
성폭력과 관련된 다른 활동을 하나 더 하면서
치유여행을 진행시키는 걸로.
예를 들어 생존자 네트워크에 가입한다든지,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한다든지.
인턴을 할 수도 있겠고.
사실 성폭력에 파묻히는 건 지금까지 좀 꺼려왔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그 분야에서는 남자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일이나 활동이라는 게 남자들이 한 명쯤은 있어서
설레기도 하고 꽁냥꽁냥하기도 하고 그런 맛이 있는 건데-
(요즘 일하는 청소년 사업 쪽에서도 멋있는 남자 선생님이 한 분 계셔서
요즘 설렘설렘*'_'* 비록 혼자 관상 중이지만......)
아 이 쪽은 정말, 특히 활동 쪽은 100% 여자라서ㅠㅠ
법 쪽이나 상담 쪽은 남자 분들도 계시기는 한데
다들 좀 나이 계신 분들이고.
아 아무튼
이런 유치한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으나
언젠가 한 번쯤 해야 할 일이긴 했었다.
이 분야의 일을 집중적으로 경험해보고 경력을 쌓는 것.
아쉽지만 내년의 연애는 소개로 이뤄지는 걸로.
그러면,
내년엔 일단 1월 초에는 좀 쉰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기도 하고, 여행 준비를 하고.
1월 말에 터키로 출국을 해서
2월 말까지 신나게 여행을 한다.
돌아와서는 3월부터 뭔가 여러 사업들이 벌어지겠지?
특히 한국 성폭력 상담소에서.
작은 말하기도 시작될 거고.
그러면 인턴을 할 수 있는 지 좀 알아봐야겠다.
생존자 네트워크에 가입할까.
교육도 좀 받고.
이런 식의 활동들을 병행하면서
치유 여행을 함께 갈 사람들을 모아서
본격적으로 활동에 들어가야겠다.
사실 성문화센터에 프로젝트를 하나 따서 들어가볼까 했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생존자 네트워크이지,
아직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의 단계는 아니다.
일단 생존자 차원에서 자유로운 여행과 자발적인 계획에 의한 무언가를
경험해보고 싶다.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의 이야기를.
그리고 이것을 사회적 목소리로 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든가,
여행기를 낸다든가.
그래서 상영을 하든, 출판을 하든 하는 거지.
사실 이건 기존에 있는 생존자 네트워크에 들어가서
함께 하자고 하는 게 가장 좋을 듯 하긴 하다.
거긴 이미 이런 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하지만 뭔가의 벽이 나를 막고 있다.
무얼까, 생각해보면 몇 가지가 떠오른다.
일단
개인적으로 약간 욕심이 있긴 하다.
독자적인 생존자 네트워크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내가 최초가 되는?
이런 종류의 좀 유치한 욕심.
부끄럽긴 하지만 원래 좀 욕심이 있는 성격이라ㅠㅠ
되도록이면 신생 네트워크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에 이런 저런 노력을 하고 있는데-
이건 뭐 일을 좀 진행하다보면 제 풀에 꺾일 것이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 건지는
알아서 체득이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나중에는 내 욕심보다는 진짜 중요한 것을 찾아서
다른 단체와 힘을 합치겠지.
내 욕심이 스스로 깨닫도록 나는 그냥 움직여주기만 하면 된다.
중요한 건 일단 그 욕심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야 결국엔 안 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으니까.
일단 먼저 새로운 단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사람을 모아보자.
그 과정에 기존의 생존자 네트워크 사람들에게도 제안을 해보는 것으로.
뭐
이게 가장 큰 것 같다.
나머지는 위에 말했듯 남자가 없다느니,
나랑 잘 맞을 지 모르겠다느니,
그런 자질구레한 이유들이고.
.
.
그러면 내년에는 일단 치유 여행에 집중하는 걸로.
사람들에게 이것에 대해 많이 알리고 싶다.
생존자의 목소리를 내는 단초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뭐 좀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이 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맞겠지.
이게 가장 덜 후회하는 일일 테니깐은.
.
.
아 이러고도 정리가 안 된다.
이건 사람들 만나서 정리해야겠다.
혼자 정리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닌 듯 하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상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