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에 편안한 생일이었다.
물론 어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축하하는 메세지를 보내주는 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페이스북도 들락날락 거리고,
카톡도 계속 열어보고.
사실 내가 원하는만큼 많은 사람들이 축하 메세지를 보내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편안하고
따뜻한 생일이었던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받았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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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게 생일은 컴플렉스와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생일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는 반에서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기 마련인데
내 생일은 방학이어서 그런 것도 없었고
엄마가 따로 생일 파티를 해주는 것도 아니어서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는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
그 때는 그게 창피해서 친구들에게 부러 생일을 알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생일을 보낸 적은 없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 기숙사생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아보았다.
기숙사는 방학이어도 집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내게 편지를 써주었고,
깜짝 케익을 선물해주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자 다시 내 생일은 방학이 되었다.
다시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 어렵게 된 것이다.
나도 생일날에 여러 친구들과 모여 보내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늘 그게 아쉬웠다.
그러다가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되어서
한 해에는 엄청 축하 메세지를 많이 받은 적이 있었다.
페이스북이 생일을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그 때는 나도 생일인 친구마다 카톡을 보내고 메세지를 보냈기 때문에
친구들도 그만큼 내 생일에 연락을 주었다.
그런데 작년인가 재작년부터 나도 생일에 소홀해졌다.
거짓,
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이 사람과 친한가,
이런 생각 때문에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내게 진짜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진심으로 챙겼다.
같이 여행 갔다온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사주고,
친구와 룸메이트 언니의 선물을 정성껏 준비했다.
덕분에 이번 생일 전 날에는
친한 언니와 영화를 보고,
제일 친한 친구와 같이 서울 구경을 했다.
앞으로 이렇게 친구들의 생일을 하나씩 챙겨봐야겠다.
그러다보면 나도 축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동아리 친구들이 많이 축하해주고,
개인적으로도 친구들이 연락을 줬다.
내가 챙기지 않은 사람도 연락을 주어서
나도 다음에 축하를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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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일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고
생일 축하라는 것도 문화의 하나일 뿐이지만,
그래도 늘 불편하고 껄끄러운 건,
'사랑 받고', '사랑을 주고'하는 과정에 서툴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한 날인 생일,
이제 다른 사람의 특별한 날을 챙겨주어야지:-)
어쨌든 어제는 전시도 여러 개 보고,
덕수궁도 가고, 재미있었다.
게다가 학원에 멋있는 남자 선생님이 있는데
어제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교실 안에서 수업을 하고 계셨던 거라 인사는 하지 못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다음 번에는 복도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바퀴벌레도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나왔나보다.
벌레를 못 잡아서
3시간 동안 난리를 피우다,
결국 내 방은 바퀴벌레의 차지가 되고
나는 방구석에서 쪽잠을 잤다.
전기 파리채가 있었지만
몇 번은 지져야 죽는다는 말에 시도도 못 했다.
왜냐면
그 바퀴벌레는
날아다녔기 때문이다!
세상에,
바퀴벌레가 날다니.
나보고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도망가면 어떡해!
에프킬라를 뿌려도 별 소용이 없고
재빨리 책으로 내리치라는데,
내리쳐?
벌레를?
그것도 천장에 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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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쩄든 어제는 편안한 생일이었다.
금요일에는 동생과 여행을 가고
토요일에는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가고,
일요일엔 가족들과 저녁을 먹는다.
다음 주에는 오랜만에 여러 친구들을 만난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기숙사 친구도 있어서
기대된다.
학원에서 하는 여러 소셜 클럽에도 등록을 해 놓아서
오늘부터 시작이다.
오늘은 철학 수업,
내일은 발음 연습,
다음 주에는 문학, 등산,
그 다음 주에는 야구를 본다.
학원비가 비싸니 이런 거라도 다 뽕 뽑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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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바퀴벌레와 함께 있기 싫으니
일찍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겠다.
그 선생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