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겁이 나."라고 말하기보다는
'그럴 마음이 없어.' ,' 나는 할 수 없어.' 또는
'그럴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편을 더 좋아한다.
(중략)
즉 진짜 문제는 결국 잊혀지고, 더 일반적인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따금 원한이나 쓸쓸함,
혐오로 가득찬 세계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타인에게 다가가 자신의 안정적인 작은 질서를
흐트러트리는 것이 두려우므로
타인들이 실망스럽다고 핑계를 대게 된다.
- 크리스토프 앙드레·파트릭 레제롱, 사람들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질까, 유정애 옮김, 민음인, 2014, 138쪽 ~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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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취했던 태도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쟤들은 왜 저렇게 친구들이랑 노닥거릴까, 공부는 안 하고'
라고 생각하며 6년을 지냈다.
사실 나는 그 친구들처럼 어울려 놀지 못 했던 것이다.
그 시절의 내 행동에 대해서
늘상 궁금했었는데,
그럴싸한 설명법을 발견해서 기분이 좋다.
사실 정리가 안 돼서 조금 찝찝했다.
그 때의 내 행동이 이해가 안 가니
그 당시의 친구들을 만나도 마음이 부자연스럽기도 했다.
사실 그래서 내 학창 시절을 설명하고 싶기도 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는 게 좀 더 편해졌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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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도 살짝 이런 버릇이 남아 있기는 하다.
내가 수줍어서 그 그룹에 못 끼는 건데,
구태여 그 그룹을 저평가하곤 한다.
'나랑 안 맞아', '쟤넨 너무 시끄러워'
이건 정말 안 좋은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친구들은 나에게 매일
"언니(누나), 놀러와요, 보고 싶어요"라고 말해주는데
나는 속으로 "너넨 너무 시끄러워"라고 말하며 밀어내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수줍어서 못 가겠으면 못 가겠는 거지,
그렇게 타인을 평가절하하면서 합리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에 나의 수줍음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별로 대인 관계에 대한 불편함이 크지는 않아서
지금 이대로 있어도 괜찮긴 한데,
이런 종류의 합리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네 진짜로 서로 좋아하는 거 아니잖아.
지금 그렇게 서로 죽고 못 살지만 몇 달만 지나면 금방 시들해질 걸.
그러니까 나는 그냥 지금부터 안 갈래.'
사실 이게 내 본심은 아니다.
나도 가서 어울리고 싶고,
그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지만
새로운 사람들도 너무 많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 동아리에서 하는 활동에 큰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잘 못 어울리는 것 뿐이다.
그럼 그냥 이렇게 편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괜히 착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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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합리화를 내려놓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내가 뭔가를 하기가 어려울 때
그 이유를 외부에서 찾거나 핑계를 대는 순간을 포착해보자.
그리고 그 때 내 머리속에 떠오른 메세지를
바꾸는 연습!
'나는 그런 데 관심 없어'가 아니라
'나도 끼고 싶은데 좀 겸연쩍어.'로.
'너넨 아직도 그렇게 어울려 노냐'가 아니라
'나도 그렇게 놀고 싶다.'로.
'너네 그거 오래 안 가'가 아니라
'영원하진 않더라도 나도 그렇게 가깝게 지내고 싶다'로.
그리고 결국엔
'나는 조금 겁이나'로.
그리고 가장 시급한 부분은,
'사랑'에 있어서의 합리화를 내려 놓는 것.
연애와 관련해서 나는 이 회피를 가장 잘 적용하고 있는 듯 한데,
나는 줄곧 이렇게 생각해왔다.
'연애를 왜 하는 거지? 좀 시간 아까워.'
물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연애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자신도 없고 하니까,
쿨시크한 척 하면서
나는 연애보다는 나 자신과 세상에 더 관심이 많아,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한 번 내려놓아 봅시다.
나는 연애가 무서워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주지 않을까 무섭고,
먼저 관심을 표하는 것도 무서워요.
관계가 시작되었을 때
성적인 접촉도 무섭고,
나를 알면 상대방이 내게 실망할까봐도 무섭고.
아무튼 이런 저런 것들이 다 무서워서
연애를 못 하겠어요.
그런데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사랑을 주고 싶고 받고 싶고 그래요.
나는 관심 없는 게 아니에요.
연애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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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글로 쓰니까 잘 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잘 적용해보자.
정리하자면,
앞으로 한동안의 숙제는
"회피성 방어기제가 작동시키는
내적 메세지 바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