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연수원에 갔음에도 아빠는 오늘도 늦었다
니가 혼자 잠들었을 시간에 아빠는 노래방에서 '의원님. 학교 다니실때 뺀드 하셨어요?' 이랬다.
(노래는 잘 하더라.)
눈치채고 있니?
올해들어 니가 외교관의 꿈을 접었다는 걸 안후에
아빠가 경제학책(정확히 말하면 경제현상을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을 니 책상위에 슬쩍 올려 놓는걸.
진혁아
인생의 절반은 부모에게, 절반은 자식때문에 탕진하게 된다지.
내 기대가 너를 옥죄지 않기를 항상 바란다.
니가 중학교 1학년때 '공고에 가도 좋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라'라고 말해서
니 엄마를 히스테릭하게 만들었던거...여전히 유효하고 진심이다.
아빠 꿈은 말이지..
니가 이해하기 좀 어려울려나.
세계를 해석하는 거였어.
그래서 심리학과나 사학과를 가고 싶었고
내가 해석한 세계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해지는 저자거리에 나앉은 내 삶이 뭐 부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꿈을 따라 살고 있는건 아니지.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공대를 나왔다.
의대를 못가서 간 공대.
니 할아버지는 아빠의 할아버지의 두번째 부인에게 태어 나셨어.
첫째 부인이 먼저 돌아가셨거든.
니 할아버지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가세가 기울었고,
할아버지는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하지 못하셨지.
그런데 배다른 형제들은 이미 의사였단다.
아빠의 운명은 거기서 어긋났다보다.
돌아가신 니 할아버지는 아빠도 의사가 되길 원하셨거든.
추석이나 설에 니 할아버지의 고향에 다녀올때마다
술한잔 드시고 하시는 말씀이 너무 싫었단다.
그래서, 아빠는 지금도 거길 가지 않는다.
아들아.
니 인생의 영역에 아빠가 침범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세상의 모든 아비는 누군가의 아버지로 불리고 싶어한단다.
미안타.
니가 아빠만큼 (사실은 아빠보다 훨씬 더 ) 공부를 잘하는 걸 보면서
니가 學人의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드는건 뭘까?
혹시 말야..
니가 꼭 가고 싶은 길이 없다면
아빠는 니가 경제학을 전공했으면 좋겠다.
호모이렉투스를 필두로 인간을 정의하는 많은 언설들이 있지만
아빠 생각에 인간은 <경제적 동물>인거같다.
인간의 모든 행동과 양태는 경제학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게 요새 아빠의 믿음이다.
계절이 지나가는줄 모르고 깊은 생각에 취하고
앞을 보고있되 그 것이 사물이 아니고 내면인 그런 삶이 아름다운 거 같다.
뭐~~니가 원하다면 딴따라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
그게 니 피를 뛰게하고, 행복하게 한다면.
아들아.
넌 중3이고 뭐든지 될 수 있단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