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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약간의 우울감   huit.
조회: 1879 , 2018-04-06 07:47

깨닫지 못했었고
깨달으려 노력했었는데,
나는 지금 약간 우울한 것 같다.
미국에서 귀국하고서부터 세상 일에 감흥이 떨어지고
꿈도 도전정신도 설렘도 사라졌었다.

약 1년간 그런 상태가 지속이 됐는데
처음에는 미국에서 너무 행복하게 살다와서
이제는 여한이 없는 거라고,
그래서 욕심 같은 게 안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는 조금씩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학교를 가도 아무 느낌이 없었고
그저 귀찮고 버겁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끌려다니듯 학교를 다니다가
학기 시작하고 얼마 후에는 공허한 마음에 또 여러 가지 일들을
잡기 시작했다.
두 군데 나라를 방문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이 역시 나는 큰 설렘없이 주어진 일을 해내는 데 열중했다.
최소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켜주었다.

정말 정신 없이 막학기를 마치고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해외로 떠났다.
약 한 달간에 걸친 일정 동안 역시 나는 무미건조했다.
외국에 나왔다는 들뜸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신남 역시,
전과는 다르게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밋밋하게 한 달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내 안에는 더 이상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어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건 내가 세상 일을 많이 경험했고
이제 마음의 평화를 찾았기 때문에
일상의 소소함을 찾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기업 준비도 시작한 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속에서는 다른 답이 들려온다.
아무리 구체적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봐도,
오래 일하지 않을 거라고
5년만 돈 벌어서 나와서 유학 갈 거라고 스스로 방어선을 쳐봐도
마음 속에서 누군가- 나 자신이겠지만-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도망치는 거야.”

찜찜하다.
마음이 내는 소리는 진실일 경우가 많은데,
무시헸다가는 후회하기 십상인데.

나는 정말로 도망치는 걸까.
미국에서 돈이 없어 돌아올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던 충격,
귀국해서도 지낼 돈이 없어 정신 없이 일을 했지만
빌린 돈을 갚고 생활비를 내고 나니
돈이 모이질 않아 생활비 대출을 받기 전까지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계속 일만 했어야 했던 경험,
그리고 그러는 동안 부모님으로부터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던 것에
대한 실망, 불신 등.

모든 것들이 얽히고 쌓여
나는 지금 세상을 살아낼 자신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그냥 인정하고 토닥여줘야겠다.
힘들었구나,
그리고 무섭구나.
몰라줘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