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여러 가지 서류들을 처리하고 있다.
워킹홀리데이에 필요한 건강진단서, 범죄기록부,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데 필요한 보건증 발급 등.
일어나서 밥 먹고 나가서 볼 일 보고, 뭘 좀 먹거나 먹을 걸 사서 집에 들어와
또 인터넷으로 해야할 일들을 한다.
지원금을 받는 데 필요한 서류들을 제출하고 꼼꼼히 체크한다.
되도록이면 미루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머릿속으로 항상 어떻게 움직이는 게 가장 효율적일 지 계산한다.
그리고 가끔씩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답답하면 올라오는 '불평'을 다스린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요즘,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이토록이나 평온해졌음에 놀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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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불평이 떠오르면 속으로 'cut'이라고 말한다.
어제 늦게 자는 바람에 오늘 아침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에 가야했고,
결국 출근을 하지 못했다.
속이 안 좋고 기분이 안 좋으니
불평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새벽에 일찍 일어나 물류센터로 일용직을 나가야 하는 것일까.
왜 나에게는 당장의 생활비가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힘들고,
나의 부모는...'
등등-
cut.
필요 없는 불평이다.
그냥 습관적으로 하는 자동적 사고다.
내가 오늘 아침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은 내가 가난하고 불행에 내몰린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게임을 늦게까지 해서다.
새벽 다섯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 사람이 모바일 게임을 하는 데 빠져서
한 시 반이 넘어서 잤으니-
거기다가 생각 없이 새벽부터 사과를 베어물고 나갔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은 당연하다.
짜증이 올라오면 내면 된다.
하지만 '언어'로 낼 필요는 없다.
말로 짜증을 내다보면 계속해서 다른 불만으로 연결되고
그 끝에 가서는 내가 처음에 왜 짜증을 내기 시작했는 지도 모르게 된다.
배가 아파서, 출근을 못 해서 짜증이 나면
그 짜증나는 감정을 언어가 아닌 다른 것들로 표현하려 한다.
예를 들면 숫자를 센다거나,
멍멍, 하면서 강아지 소리를 낸다거나.
물론 당연히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그냥 속으로.
우선 cut,
을 외쳐서 불평의 늪으로 빠지는 것을 중지시킨 다음,
남아 있는 안 좋은 감정들은 하나, 둘, 셋, 넷이라고 생각하면서 불평을 마저 한다.
숫자로 어떻게 불평을 하나, 싶겠지만 그냥 하면 된다.
아....하나, 둘, 셋, 넷, 아오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씨, 아홉, 열, 열하나, 열둘..
이런 식으로.
한 삼십 쯤 세다보면 내가 뭘 하나 싶다.
그리고 짜증은 금방 사그러든다.
화가 계속 나는 이유는 말로 화를 내기 시작하면 그 말이 다시 나를 화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싸이월드 친구 타듯이 계속 계속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때문에,
잠깐이면 끝날 부정적 감정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이 덕분에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그래서 군것질도 줄고, 다른 곳에 쓸 에너지가 많아진 것 같다.
이건 사실 시저 밀러가 강아지한테 쓰는 방법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독특하게도 시저는 강아지가 화를 내는가 싶으면 몸을 툭, 쳐서
분노로 빠져들지 않게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것만으로도 사실 화가 나지 않게 하는 데 좋은 도움이 된다.
물론 화가 난 모든 사람들을 툭툭 쳐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진짜 이유가 있어서 화가 났다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건 그냥 습관적인 짜증이나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뭐 지하철을 놓쳤다든지, 늦게 일어나서 손해를 봤다든지.
아니면 그냥 상상 속에서 화가 났다든지.
개들을 훈련하는 방법을 보면 나, 곧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내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보는 것은 사실 강아지를 보려고 보는 게 아니라,
강형욱 훈련사의 훈련 방식과 그 아래에 깔려 있는 인지행동교정, 학습 원리 등을 파악해서
나한테 적용해보려고 보는 것이다.
꽤나 많은 부분들에서 도움을 얻었고, 실제로 나를 강아지라고 가정하면
많은 습관들을 쉽게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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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쓸데없는 부정적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말끔히 씻겨나가니까
편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