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조금 적응이 되는 것 같다.
정확한 매커니즘은 모르겠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나의 '사고의 회로'와 '호르몬 분비' 같은 것들도 다 변한 것 같다.
그냥 몇 년 전의 나와는 너무나 다르다.
처음엔 너무 낯설었고
마치 깊은 낮잠을 자고 깨어난 후에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누구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로 있는 것이 낯설었고
처음 사는 것 같았다.
이렇게 느껴본 적도 이렇게 살아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여성 아동 성폭력 생존자를 위한 가이드북인
'The courage to Heal'이라는 책의 'Resolution and Moving on' 파트에
이런 내용이 잘 나와있다.
한 생존자는
'I spent the first thirty years of my life feeling like I was behind
a thick glass wall that separated me from all of the real people in the world.'
라고 이야기했다.
세상 사람들과 나 사이에 두꺼운 벽이 있어서,
사람들과 웃고, 먹고, 떠들 수는 있지만 절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존재'할 수 있었지만
내가 그들의 '일부'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벽이 사라지고 다시 '연결'된 느낌이 든다.
벽이 있을 때는 몰랐지만 벽이 사라지고 나니 얼마나 답답한 상태였는지,
얼마나 산소가 희박한 공간에서 살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벽 없이 사람들과 가슴을 맞댄다는 게 무엇인지,
내 심장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심장도 뛰고 있다는 것,
그들의 몸에도 피가 돌아 따뜻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평생을 실험실에서 보낸 비글이 처음으로 풀을 밟곤 소스라치듯,
나도 처음 느껴보는 숨결, 온기, 진동에 소스라쳤다.
낯설고 낯선 감각.
이제 '기억'이 쌓여간다.
우리는 매순간 상황을 판단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판단은 거의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한다.
여기서 '기억'이라는 것은 '선행 데이터'를 의미한다.
이제 나는 행동의 준거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기억'들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삶에 적응해내고 있다.
.
.
세상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방식 또한 많이 변했다.
그래서 낯설고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지난 이 십여 년 간 나는 온전히 세상을 인지하지 못했다.
'생존'의 관점에서만 보았던 것 같다.
생존에 필요한 것은 주워담고
필요하지 않은 것, 혹은 방해되는 것은 버렸다.
경험도, 관계도 모두 그러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일상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노트북을 켜고 미친듯이 감정을 쏟아내지 않고도
잠들 수 있게 되었고
주저앉아 울지도 않게 되었으며
버스에 앉아 창밖으로 무엇이 지나가는 지도 모르고 공상에 잠겨 있지도 않게 되었다.
간판을 읽고 하늘을 보며 지나가는 자전거를 본다.
더이상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지 않고
쉴새없이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터져버릴까 걱정하지도 않는다.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별 일이 없는 한 당분간은,
아니 아마 꽤 오랫동안 이렇게 살 것 같다.
얼떨떨하지만,
그리고 익숙했던 방식이 자꾸 떠오르고 돌아가고 싶지만,
그래도 몇 년 전의 내가 꿈꾸던 오늘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고통과 분노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이 일기장에 매일 매일 썼었잖아.
.
.
물론 잃은 것들도 조금 있다.
사람을 끄는 '공명' 같은 것들이 조금은 옅어진 것 같다.
내가 내뿜던 고통과 우울, 분노와 같은 것들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의 공명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과 치열하게 만났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고
반대로 내가 그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더이상 그런 게 없다.
별로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조용해진 느낌-
'글'을 잃었고,
'그 시절'을 잃었다.
아쉬워하고 있으려니 이런 생각도 든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언제나 '과거'에 있다는.
그러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별로 신경쓰지 않아야겠다.
만족을 찾아서 그 어느 곳을 가든, 그 무엇을 하든
내게 가장 큰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내가 절대로 잡을 수 없는 '과거'일 것이기에.
만족이란 원래 생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만족을 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편이 좋겠다는 것.
.
.
창문으로 시원한 여름 바람이 들어온다.
오늘도 새로운 나로 보낸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