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어느 정도의 망상이나 공상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유독 위험한 상황에 대한 상상을 하는 때가 많다.
가령 어떤 살인 사건 기사를 접한 다음,
내가 그 일의 한 부분이 되어 사건에 연루되는 망상을 아주 구체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망상의 내용은 대부분 내가 참여해서 일을 잘 해결하는 것이다.
아마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누구라도 도와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탄식과 함께
상상 속에서라도 피해자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의 발현인 것 같다.
가령,
주차장에서 전남편에게 찔려 돌아가신 여성 분의 기사를 접한 후
너무 불쌍하고, 사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러면서 우리 빌라 주차장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하게 되고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할 지,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주차장에서 웬 비명소리가 들린다.
나는 주차장으로 가보고 살인범이 나를 보고는 쫓아온다.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러면 가족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다칠까봐
큰 길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범인을 따돌리고 경찰에 신고한 뒤
피해자에게 돌아가 상태를 살핀다..등.
문제는 주로 이런 망상을
조용하고 할 것이 없는 잠자리에 누워서 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을 너무 구체적으로 상상하다보니
몸까지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공포를 느끼고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각성상태가 된다.
잠자기 전에 이런 일을 반복하는 것은 숙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고치려 한다.
사실 고치려고 많이 노력했고
전보다 나아지기는 했는데
지난 주와 이번 주에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 사건 소식이 들려와서 더 심해졌다.
하루 걸러 한 번씩 누군가가 살해당하고, 폭행당하니.
안타까운 마음은 기사를 접할 때 느끼고
밤에 잘 때, 혹은 혼자 있을 때 관련된 망상은 안 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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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코이케 류노스케)
이라는 책이 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움직임 연구소에 갔다가 발견하게 된 책인데
생각과 잡념이 많은 나에게 아주 딱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마음이 오로지 '보다 강한 자극'을 위해 내달리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도 담담하고 은은한 행복감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더 강한 전기 자극을 뇌에 주기 때문이다."
- 생각 버리기 연습, p6, l3~6
저자에 따르면 '생각을 멈추자!'라고 마음 먹는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생각을 멈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한다.
오감을 훈련하여 현재에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인데,
평소에 충분히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고, 맛보아야 한다고 한다.
보고 있되 보지 않고
듣고 있되 듣지 않으며
먹고 있되 맛보지 않고
만지고 있되 느끼지 않고
냄새를 맡고 있되 맡고 있지 않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오롯이 감정에 집중하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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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는 부정적인 자극이 한 번 들어오면
연쇄 반응이 일어나는 특징이 있다.
측은함, 슬픔 등을 강하게 느끼고 관련된 감정들이 솟구쳐 오른다.
그래도 이 정도 감정들은 조금만 주의를 돌려주면 금방 사그러드는데
문제는 '방어 기제'이다.
누군가에게 부정당하거나, 내가 틀렸다고 비난 받는 것에 정말 민감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싸우는 것은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서 싸우는 것이다.
과거와도 싸우고
상상과도 싸운다.
그렇게 싸움으로써 만족을 얻는 것 같다.
나에 대한 부정을 조금 더 느긋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틀릴 수도 있고
타인이 나보다 얼마든지 더 옳을 수도 있다는 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싶다.
그게 잘 안 된다.
나를 비난하는 말을 듣자마자 비상 셔터가 내려오면서
어떻게든 상대방이 틀렸다는 증거를 갖고 싶어하고
내가 옳은 사람이라는 지위를 선점하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멀리하는 것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한 상황에 대한 상상도 많이 하지만
누군가와 언쟁을 하는 공상도 많이 한다.
전에 마찰이 있었던 사람이 무언가를 잘못하는 상황을 전제하고
내가 맞는 말을 다다다 내뱉어 정당성을 확보하는 그런 상상.
예를 들어,
단체 활동을 하다가 나와 리더십 스타일이 맞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공연 연습을 할 때 그 친구는 소리를 지르고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어서라도
완벽하게 무대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였고
나는 무대의 완성도가 과정에 있어서의 권위/폭력적인 분위기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어서 은근히 맞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당시에도 큰 트러블이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도 문득 문득 그 때를 떠올리면
그것을 주제로 삼아 상상 속에서 언쟁을 벌이고 싸우게 된다.
이것도 별로 영양가 있는 습관은 아니기 때문에
고치려 한다.
일단 행동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해보려 한다.
.
.
1. 잠자리에 누워 공상하지 않기
- 10분 셧다운
- 누워서 10분이 지났는데도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일어나기
** 처음엔 백색 소음&자연에서 나는 소리(어플이용) 도움 받기
2. 낮에 공상 줄이기
- 30초 셧다운 : 공상이 시작된 후 30초 이내에 '공상을 시작했다'고 인지하기
-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 중 한 가지 골라서 무슨 소리인 지 맞춰보기
-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보이는 것 중 하나 찾아서 묘사해보기
3. 싸우거나/구해주거나/도망가는 공상 금지
- 30초 셧다운
- 왜 이 공상을 시작하게 됐는 지 추적해보기
ex. 살인사건 관련 기사를 읽었다/스릴러 드라마를 보았다/특정한 기억이 떠올랐다 등
- 묘사하기 '아, 방금 전에 살인사건 기사를 읽어서 내가 지금 그 피해자를
구해주는 공상을 하고 있구나'
- 외부 상황에 대한 생각으로 전환
ex. 화분에 물을 주어야 하나? 저 연기는 왜 피어오르나? 등
4. 평소에 외부 상황/타인에 대해 꾸준히 관심 갖기
** 나는 전경이 내 내면이고 배경이 외부 상황/타인이다. 이 전경과 배경을 바꾸자.
영구히 바꾸어야 한다기 보다는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한동안은 전경을 외부상황/타인으로 바꾸기.
- 하루에 한 명 이상에게 안부를 묻기
- 한 가지 이상의 현상 또는 사물을 관찰하여 그리고 기록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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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근본적으로는
쌓여있는 분노와 욕망을 분출할 필요가 있다.
살면서 화를 많이 참고 살다보니 아마 대리만족을 하고 싶은 것 같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전에도 호신술을 배우거나 무술을 배우면서
에너지를 발산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기회가 안 되어서 하지를 못했다.
장기적으로 시도해봐야지.
그리고 생각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너무 내면에 파묻혀 사는 건 아닐까 싶다.
몇 달 전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안부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잘 지내냐고.
나도 스스럼 없이 잘 지낸다고, 너는 잘 지내냐고 물었고
친구는 최근에 문제가 좀 있긴 했는데 잘 해결되고 있다, 고 했다.
잘 해결되고 있다, 고 하고 구체적으로 언급은 안 하길래 더 되묻지는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친구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 시기에 자신이 매우 우울했고 자살충동까지 느꼈었다고.
어쩌면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연락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그저 안부 연락이었어도 좀 더 자세히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고
적어도 작은 격려는 해줄 수 있었겠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타인에게 관심을 좀 갖자.
힘들다고 먼저 털어놓는 사람 뿐만 아니라
힘들어보이는 사람에게 괜찮아?라고 먼저 묻고
뭐 별 일은 없냐고 먼저 물어도 보고.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for a battle that you know nothing about.
모든 사람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항상 겪고 있다.
내가 별 문제 없다고 모두가 괜찮을 거라 속단하지 말고
잘 지내고 있는지
뭐 힘든 점은 없는지
혹은 뭐 기쁜 일이라도 있는 지
궁금해하고 묻고 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