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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밥
 시시포스 498호 일지   .
조회: 1833 , 2018-11-16 07:21
시험을 쳤다.
제일 자신있던 물리를 한국사 다음으로 가채점을 했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도 여태까지 친 시험들 중 이번에 물리를 제일 잘 쳤다고 자랑했다.
이번 물리시험이 쉬웠던 것은 맞다. 확인해본 컷들이 꽤나 높았다.

급하게 해온 가채점으로 매긴 후
나는 처음에는 내 가채점을, 다음으로는 평가원을 의심했다.
이거 잘못 된거 아냐?ㅋㅋㅋ

복 받혀오는 감정을 애써 무시했다.
다른 과목들은 잘 쳤지만 가고싶은 대학에 떨어졌다 해서 
눈물은 안 나왔다.
기분만이 착잡할뿐. 슬프긴 슬펐다.
그간 친구들하고 우리 대학에 가면..하고 시시덕 거리며 약속을 했던 게 생각났다.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잠자리에 들었다.
그동안 밀려왔던 피로가 한번에 찾아오는 기분이었다.
침대에 누웠는데 아까의 미련이 떠올랐다.
컴퓨터를 키고 이번엔 시험지를 확인하였다.
대체 어디서 실수한 거야?

...
터무니 없는 실수들을 했다.
제일 자신있었던 과목이었는데...
아니 어쩌면 내심 실수를 할까봐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항상 해왔으니까.
그런데 여기선 하면 안되는거잖아.

눈물은 안 나왔다.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슬펐다. 너무나도 슬펐다.
괴로웠다. 마지막 기회는 아니더라도 인생이 달려있는 시험이었는데
이런 어리석은 실수들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는게.

재수는 형편 상 안 된다.
대학을 가서 잘 하면 된다고 하지만, 쉽게 잘 물드는 내가 잘 해낼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 싫었다. 이 좃같은 감정을 언제까지나 간직해서
다시는 또 다른 반복을 안 하고 싶지만, 나는 이런 슬픔을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싫다. 앞으로도 중요한 자리에서 이런 실수들이 내 앞길을 막아버릴것 같아 두렵다.

자살은 하고 싶지 않다.
죽고싶다. 그저 홀연히 사라지고 싶다.
더 이상 힘들기도 지쳤다. 울기도 지쳤다.
책임감이 없어보이려나? 엄마아빠는 보험금 드리지뭐. 아직 애도 없구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
아직까지 질긴 삶이 지속되는 이상
우리는 이 짐들을 지고 올라가야 한다.
이제 오르막길의 시작이다.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이 악물고 살아야 한다.

맨밥   18.11.17

감사해요! 저도 답변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