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처음으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진다.
전부터 줄곧 나는 뭔가 다르다(=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흔치 않은 일을 겪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를 다른 사람과 분리했던 건 아닐까,
돌아보면 그런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다.
왜 그런 지도,
그리고 어떻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지도.
기분이 가라앉고 두려운 것 투성이였던 지난 해와 달리
올해로 넘어와서는 몸과 마음에 활력이 돈다.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건 똑같지만
작년엔 그로 인한 부담감이 크고 불안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뭘 할까, 어떻게 해볼까 기대가 된다.
대학 다닐 때의 느낌이 다시 살아난달까.
그렇게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새로운 것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내가 변방에 떨궈진 외톨이가 아니라
그냥 수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살아가는 중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스스로 세상과 나 사이에 세워놓았던 마음의 벽,
나는 너희들과 달라서 너희가 잘 이해가 안 가,
혹은 너희는 나를 잘 이해 못 할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슬퍼했던 마음들이 녹아내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줄 것 같고
나도 그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래서 나도 이 세상에 속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인 감정들, 고통, 위기, 관계의 어려움, 폭력의 터널을 지나
나의 진로, 직업, 관계, 미래, 경제적 문제 등
많은 사람들이 직면하고 고민하는 그런 문제들로 관심사가 옮겨갔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뭔가 감격스럽다.
누가 보면 취업도 못 하고 있고
변변한 직장도 전공도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감격스럽냐,
네 인생 걱정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좋은 인생, 직장, 경제적 보상 등을 생각하며 달려온 사람들에게
이 시기는 그 보상을 받거나 혹은 더욱 본격적으로 달려갈 시기니까.
하지만 나는 이제 시작이다.
시작 시점이 남들과 달라 또 내가 이상해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지구에 있는 70억 명의 사람들을 하나 하나 떠올려 보려고 노력한다.
얼마나 다양한 삶이 있겠는가.
나는 주류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삶과 다르게 산
그 수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뭐 그리고 인생이 시험도 아니고
틀리게 산다고 무슨 대수랴.
누가 채점을 할 것이며 누가 평가를 할 것인가.
가십거리로 이러쿵 저러쿵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들은 결국 나와 다른 시점에 다른 곳에서 인생을 끝마칠 사람들이다.
아무튼
그동안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던 대중 콘텐츠들에 대한 관심도 좀 가져보고 있고,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고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다못해 먹는 것도 안 먹어본 것을 선택하는 중이다.
그런 작은 선택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에 묶여 있었는 지 알 수 있었다.
어제는 친구들과 브런치를 했다.
스프를 시키는데 익숙한 야채와 감자를 시키려다가
잘 안 먹던 단호박을 시켰다.
단호박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잘 안 먹던 가지도 먹어보고,
잘 안 먹던 레토르트 식품도 사 먹어 보았다.
잘 안 읽던 분야의 책도 읽어보고,
잘 안 배우던 지식도 배우기 시작했다.
어제는 아이폰 카카오톡 테마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어렸을 땐 소스 만지는 걸 재밌어 했었다.
웹 페이지 소스도 고치고 홈페이지도 만들고 했었는데,
대학에 가면서 예술, 기술, 자연과학 쪽을 멀리 했었던 것 같다.
주로 철학, 사회학, 인문학, 심리학 쪽을 몇 년이나 팠는데
이제 좀 다른 쪽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코딩 수업도 듣기 시작했는데,
꽤나 재밌어서 목표를 아이폰 어플 하나 만들기로 잡았다.
내 필요에 꼭 맞는 어플을 내가 그냥 만들어 쓰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크고,
좀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유용한 어플을 만들어서 애플스토어에 올려보고 싶기도 하다.
블로그도 새로 시작했다.
이런 소소한 취미들이 전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었다.
요즘은 내 취미가 다양해지니 타인들의 다양한 취미와 관심사에도
관심이 가고 공감이 가기 시작한다.
이런 여유를 다시 갖게 되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