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서는 사람의 자기 인식은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이야기한다.
'인지'라는 것은 굉장히 왜곡되기가 쉽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것은
그만큼 나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온 말이리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나는 나 자신을 아는가.
아니, 잘 모른다.
어쩌면 알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가 정확할 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정확히 알고 그대로 행동하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 오류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나는 새로운 곳에 가면 사람들을 분류하여 친해지고 싶은 사람,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
을 나누곤 한다. 그러면서 '나와 맞는 사람은 따로 있어'라고 생각한다.
정확할까?
아니.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나에게 안전한 사람, 혹은 안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분류하여 최대한 나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이미 알고 그대로 행동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나와 맞는 사람'을 가려내는 게 진짜 목적이 아니지만
무서워서 안전한 사람과 안전하지 않은 사람을 분류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핑계'를 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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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내 자동적 사고의 사전을 만들어볼 수 있다.
1. 저 사람은 나랑 안 맞아(을 거야) = 저 사람에게 다가가기 어려워. 무서워.
대체어(동의어) = 친해지고 싶어.
2. 이(런)걸 해서 뭐해 = 잘 해낼 자신이 없어.
대체어(동의어) = 잘 해내고 싶어.
3. 이곳(공동체, 단체 등)은 나랑 맞지 않아. 별로야 = 여기서 잘 지낼 자신이 없어. 무서워.
대체어(동의어) = 여기서 잘 지내고 싶어.
이런 식으로 만들다보면
조금 더 정확하게 '사고'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많은 것들을 기록하려 한다.
나의 인식과는 달리 나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생활한다.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문제는 아니다.
사람이 기계처럼 살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비합리적으로 살고 있으면서 스스로가 합리적이라고 믿는
인지부조화이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원인과 결과를 추론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데이터를 남길 생각이다.
자는 것, 먹는 것, 쓰는 것 등의 데이터를 남기기.
쓰는 것은 가계부를 통해서 이미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으니 신경 쓸 것 없다.
자는 것은 어플을 켜놓기만 하면 되고.
먹는 것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이것도 어플로 가계부처럼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기!
무조건 억제하려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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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나를 잘 모른다.
언제나 의심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행위를 관찰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타인의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까지 나는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라는 생각 때문에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실제로 가깝지 않은 타인보다는 지각의 불완전함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내 평가가 더 정확한 것은 틀림 없다.
지각의 불완전함보다는 데이터의 부족이 객관성에 더 치명적이니까.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
내가 내 이야기를 많이 하거나 나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정확히 나를 평가해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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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
벽이 느껴진다
접근하기 어렵다
좋은 에너지가 넘친다
예쁘다
큰 사람이 될 것 같다
잘 될(살) 것 같다
인상이 좋다
뭐든 잘 할 것 같다
긍정적 피드백들을 믿고,
벽이 느껴지거나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 고민해보기.
아마 방어기제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생긴 것도 한 몫 할 것 같고.
벽이 있는 게 아주 좋지 않은 것만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함부로 못 대하니까-
그래도,
두려움에 벽을 치는 걸,
냉담한 척, 무관심한 척 포장하지는 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