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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애정결핍   neuf.
조회: 1996 , 2019-03-23 12:17

몇 년 전 지인의 소개로 청소년 캠프에 보조교사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소개해준 지인과, 함께 보조교사로 참여한 친구 한 명 외에는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한 두 번 회의를 가진 후 캠프가 시작되었는데,
둘 째날 즈음 캠프를 주관하는 단체의 활동가 중 한 분이 지나가는 소리로 내게
'애정결핍인 것 같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그냥 자기들끼리 하는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그 때는 그게 불쾌했고 내내 찝찝했다.
나를 얼마나 봤다고 나더러 애정결핍이라는 건가 싶었다.
그 뒤로도 문득 문득 그 때 생각이 났고
내 행동들을 떠올려보며 괜스레 얼굴이 화끈해지곤 했다.

그래도 한 번도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내가 애정결핍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놀림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며칠 전에도 캠프에 함께 참여했었던 다른 선생님이 내 인스타 글에 좋아요를 눌렀을 때,
그 때의 일이 다시 한 번 생각났다.
'애정결핍'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똑같은 패턴을 밟으며 '아 그 사람들이 나를 놀렸었지. 정말 창피했었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그런데 그 분들은 나의 어떤 면을 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 며칠 안 되는 시간 동안 나의 어떤 행동이 그들에게 그런 생각을 들게 했을까?


.
.

너무 무겁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생각해보니 어쩌면 정말 그런 면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늘 어떤 활동을 하거나 그룹에 속하게 되면
그곳에서 가장 도드라지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하는 것, 사람들에게 '잘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들은 초반에는 늘 성공을 거둔다.
왜냐하면 처음 만난 사람들은 초반에는 늘 어색해하는데
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다가가니 나를 가장 편하게 여기고 내게 의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서로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내게 의존하는 정도가 떨어진다.
나는 이 시기를 정말 못 견뎌하고 내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듯한 느낌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초반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비뚤어져서는,
'이 그룹과 나는 맞지 않아'라며 사람들과 선을 긋고 벽을 쌓고
그 활동이 끝나고 난 후에도 '아 그 활동은 힘들었어'라며 그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합리화를 하곤 했다.

이런 패턴은 사실 대학시절 내내 계속되었다.
성공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영향력이 유지된 그룹과만 유대 관계를 이어나갔고
그렇지 않는 곳에는 무관심했다.
왜냐하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거나 더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지켜보거나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괜히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자신있게 나서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질투하고 불편해했다.

특히 나는 내가 주도권을 쥐지 못하는 상태를 못 견뎌했다.
그래서 어떤 활동을 하든 중간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었다.
처음부터 시작해야 그 활동을 남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주도할 수가 있는데
중간에 들어가면 이미 활동을 하던 사람들을 따라잡기가 힘들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고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보조 역할을 맡거나 중간에 들어가게 되는 경우 안전부절하거나 
효능감을 얻지 못함으로 인해 느끼는 헛헛함을
오버스러운 행동을 통해 주목을 얻어 채우고자 했다.

문두에 언급했던 캠프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보조교사라는 위치는 말 그대로 캠프를 보조하고 아이들을 관리하는 역할이라
캠프 전체를 코디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게다가 이미 해당 캠프에 여러 번 참여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나는 뜨내기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고
그래서 더 오버스럽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다.

더 크게 웃고,
더 과장되게 행동하고,
아프면 티내서 주목받으려 하는 등,
의 행동을 했을 것이다.

.
.

나는 주목받거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
그것을 잘 숨기고 컨트롤 한다고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많이 드러났던 것 같다.
그게 사람들을 크게 불쾌하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은연중에 나의 그런 면에 대한 '표현'은 여러 번 들었던 것 같다.

'욕심이 많다',
'애정결핍이다', 등.

소유욕이나 과시욕은 적지만 인정 욕구는 크다.
속한 공간이나 그룹에서 가장 주목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주목받는 이유나 방법은 크게 상관이 없다.

능력이거나
외모이거나
성격이거나
아무튼 그 어떤 것이든 내가 가장 뛰어나서 사람들이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는 것.
그래서 내가 그곳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게 내가 좇는 것이고
그게 잘 되지 않았을 때 질투와 불편함, 그리고 불안함을 느낀다.
특정 활동을 하거나 그 그룹과 함께 있을 때는 이런 감정들이 
'오버스러운 행동'으로 드러나며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불편해하거나
관련된 기억들을 떠올리기 싫어한다.


.
.


이제야 조금 정리가 되는 듯 하다.
물론 큰 문제는 아니지만,
나름 반복되는 패턴인데 무지했던 영역이므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을지언정
나의 이러한 면으로 인해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내가 이 문제로 인해 계속 껄끄럽게 여기는 관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좀 더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기 위해 한 번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
재미있는 주제가 또 하나 떠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