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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가 들린다   Play_List
조회: 714 , 2019-09-12 22:07



1.
그날도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일곱 자리였다.
내 현관의 비밀번호는 여덟 자리였고, 그것은 분명 다른 방에서 나는 소리였을 것이고, 현관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소리가 충분히 크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방에 들어올 때 현관이 꽉 닫히지 않았다면, 내가 그것을 놓쳤을 리가 없다. 잠결에 했던 생각들을 회상하자니 아리송하지만 아마도 그 정도까지 생각했을 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엔 여덟 자리였다.

내 기억에는 잠시 사이가 있다. 그 후로부터 감은 눈 위로 빛이 한 번 잔잔하게 밝아지기 전까지. 그것이 곧 어두워졌다가 두 번째로 밝아졌을 때에서야 눈을 떴고,
누워 있는 나로부터는 반투명한 유리문 건너편인, 현관 안의 센서등이 들어와 있다가 꺼지는 순간을 보았다.
술을 마신 누가 방을 착각해서 비밀번호를 누르다가, 살짝 열려 있던 현관(납득이 되지 않았지만)을 열고 들어온 것이라고 짐작했다.
일어나서 불을 켜고 유리문을 열어제꼈다.

다시 잠들기 전에 확인한 시간을 봤을 때, 그때는 5시 전후였을 것이다.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근했다.
그리고 점심 즈음의 메시지는 이렇다.
> 7770번 탔어 이어폰 하나 훔쳤어...하늘색...
< 응 잘했어 잘 들어가
> 이제 들어왔어 난 당산역에서 택시타고 왔는데도 되게 멀고 힘들다...우리집 왔다갔다 할 때 되게 힘들었겠어...고생했네 어제는 미안했어 안 그럴게
< 그리울 때도 있고 보고 싶을 때도 있고 미안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이유로 나나 네가 바뀌진 않을 거야
> 그래도 난 같이 있으면 좋아

일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고 보고 쏘아대진 않으려고 했다.
내가 달래는 것도 웃기다는 생각에 그것도 마다했고
그밖에 달리 하고 싶은 말도 없었다.
헤어진지 몇 달이 지난 전 남자친구 집에, 집 앞도 아니라 집 안에
쳐들어간 경험이면 자신에게 뭔가 자극이 되겠지.
알아서 하겠지.

그리고 그날 섹스를 하지 않은 것은
서로에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
지난 시절의 나약함을, 나약함에 의한 선택들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바다가 들린다'에서 '유약함을 후회했다'는 문장이 있는 부분을 읽고는, 무언가를 회피할 의도로 우유부단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질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내 나름으로는 그렇게 처신하고 있다.
아닌 건 아닌 거고, 끝난 건 끝난 거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일시적인 기분에 의한 결과가 아니었다.
'유약함을 후회했다'는 문장이 있는 부분은 예상대로 핸드폰으로 찍어 둔 것이 있었다.

"
시모키타자와 역 플랫폼에서 반대 방향 전철로 달려가 올라타지 않았던 유약함을 나는 역시 조금 후회했다.
"

그렇지만 그 바로 앞 문장들을 빼고 보면 의미가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
쓸쓸함에 견디지 못하게 됐을 때, 니가타까지 날아가거나, 역에 매복했다가 우연을 가장해 맞닥뜨리는 그런 짓을 하는 걸까.
그처럼 고삐 풀린 츠무라 치사의 앞뒤 가리지 않는 행동력을 나는 처음으로 대단하게 생각했다. 도의적인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

1의 내용은 누구에게도 말하거나 글로 남기지 않으려고 생각했는데,
이 문장들을 보니 써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기분에 절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