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의 존재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쓴 글씨를 지울 수 있다는 데에서 나온다.
악기의 존재가치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연주할 수 있다는 데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가치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선행을 베푸는 데에서?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에서? 특정 행동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가치가 없는가?
그렇지 않다. 결국 인간의 존재가치는 존재함 그 자체에 있는 것이다.
혹자는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치를 가지지 않는 것인가 하고.
그렇다면 존재함에 대한 증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내가 팔을 잃는다면 팔을 잃은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가? 또는 내가 죽어 정신을 잃고 몸뚱이만 남는다면 그것은 내가 아닌가?
그렇지 않다. 육체가 사라져도, 정신이 사라져도 나는 존재한다. 즉 나는 육체가 아니며 정신 또한 아니다.
새로운 의문이 생길지도 모른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는.
정신은 제쳐두고 육체가 없어진다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화장을 시켜 유골함에 뼛가루를 모은 것을 바다에 뿌리면 내 육체는 없어진 것인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팔이 잘려도 그것은 나의 일부분이다. 마찬가지로 기본입자의 모임인 나의 육체는 분해되어 흩어지는 것일 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굳이 더 나아가 물질과 반물질의 쌍소멸에 의해 진정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면, 물질은 쌍소멸 시 방출되는 에너지로 변환된 것뿐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다. 변화했다고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몸을 이루던 물질들이 영겁의 시간을 거쳐 재조합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 예를 들어 특정한 탄소원자 하나가 다른 탄소원자 하나로 대체된다고 나의 존재가 달라지는가? 만약 이 글을 읽어 내려왔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을 구성하는 탄소원자와 내 몸의 탄소원자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면 나와 세상 또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일원론적 사고에 발을 들인 것이다.)
다시 돌아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육체와 정신에 국한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인가?
이를 영혼이라고 부르자. 종교적 영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육체와 정신보다 더 안쪽에 있는 본질적인 것을 임의의 단어로 지칭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고과정에 의해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
우리의 존재의 본질을 묻는 것인 만큼 진지하게 고찰해야 할 문제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