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임대아파트에, 옆동에 사는 동생이 있다.
나이는 나보다 3살이 어린데, 결혼을 했고, 이제 돌지나 14개월된 딸이 하나 있다.
동생은 참 귀엽고 예쁘게 생겼는데
딸내미가 남편을 닮아서........ 안타깝다.
어딜 데리고 나가도,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일부러 꽃분홍색 옷과 치마와 레이스달린 하얀양말을 신기고 분홍색 땡땡이 구두를 신긴단다.
오며가며 눈인사하다가,
가끔 집에서 같이 점심도 먹고, 한밤에 나가서 커피도 한잔하고
운동도 같이 했던 사이.
막창이 너무 먹고싶어서, 같이 가자고 했더니
흔쾌히 나와주는 동생.
여자 둘이서 막창집에 들어가서, 밤바람 쐬며,
오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소주는 필수.
동생네 결혼이야기, 시댁이야기, 친정이야기, 딸 이야기,
그리고 둘째는 아들 낳아야한다고 압박 받아 스트레스라는 이야기까지.
남편이 장자라나... ㅎ
나는, 결혼을 왜 하냐, 스트레스 받게... 라고 무심결에 대꾸했지만
동생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가정을 꾸리고 안정감있게 사는게 좋아요, 라고 대답한다.
그사람이라면, 결혼하고서 잘 살 수 있을 것같았고
아니.
그 전에, 우리는 결혼할 거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8살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이 깊었고 어른같았고,
어린 내가 공부하며 투정부리고 짜증내고 혼자 화를 내도 묵묵히 감내하고 받아주는 사람이었다.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씨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그냥 아저씨라 불렀다.
나의 아저씨.
몇년의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린 헤어졌고,
그와 나의 이별이 엄청난 아픔이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끝자락의 아픔이 엄청났지만.. 감당하기 힘들었지만,
눈물을 흘려보려고 해도, 친구들이 [넌 왜 헤어졌는데 울지도 않냐] 라는 말에
애써 눈물 흘려보려 슬펐던, 속상했던, 싸웠던, 서운했던 일들을 떠올려보려 노력해도
즐겁고 좋았고 행복한 이야기들만 생각이 나서,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그뒤로 얼마간의 시간동안
호감만 가졌던 사람이 몇있고, 제대로 연애를 한 것도 없는듯.
마음을 닫아버렸나, 내가.
문을 열고 나오길 기다렸던 그사람도, 이젠 내사람이 아니고..
난 그냥 이자리에 그냥 또 멍하게 앉아있는 것 같다.
얼마전 20년지기 친구를 만났다.
야, 주변에 괜찮은 선배나 친구 없냐?
왜?
연애다운 연애 좀 해보게. 가까운데 살고, 친구같고, 보고싶을때 한번씩 볼 수 있고..
갑자기 왜?
좋잖아. 서로 할 일 하면서- 친구같이 장난도 좀 치고..
외롭냐, 결혼도 안 하겠다는 애가 무슨.
야이씨. 결혼은 안해도 연애는 해야지. 그럼 평생 연애도 하지 말고 혼자 늙어죽냐.
하긴.
예전과는 달리, 열정, 사랑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것.
그만큼 찌들어버린듯.
순수하게 그사람만 바라보고, 순수하게 좋아하고, 또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었던
여고시절 내 첫사랑.
그때처럼 연애할 수 있을까, 다시?
참... 생각해보니 웃긴다.
나이 27살에,
16살, 17살, 18살, 19살을 함께한 그때를..
야자 마치고, 그녀석 학교 교문 앞에 교복입고 기다렸던 그때를.
함께 도서관가고, 책을 보고, 레몬에이드를 마셨던 그때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손만 잡고 걷기만 해도 좋았던 그때를.
계명대 돌담길을, 서로 같은 분홍색 셔츠를 입고 걷다 소나기를 맞았던 그때를.
늦은밤 대입 준비를 하다 서로 집까지 바래다주고 또 바래다주던 그때를.
수업시간에 필기하던 노트 뒷편에 편지를 써날렸던 그때를.
10년이나 지나버린 그때를 그리워하고,
그때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웃긴다 박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