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읽으며 그가 언젠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소설로 쓸 거라고 예감 했다.
정약용 일가의 고향인 양수리 두물머리에 자전거를 멈춘 김훈은 정조말 한 사내의 치욕과 오랜 침묵에 대해 생각한다.
신유박해때, 정약용은 적극적인 배교와 밀고를 통해 목숨을 구걸한 반면, 형 정약종과 조카사위 황사영은 믿음을 지키고 사지가 찢기는 죽음으로 순교한다.
18년의 긴 유배기간 동안 정약용은 수천개의 서찰, 시, 서간 어디에도 그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김훈은 그 긴 침묵의 심연속에 갈무리된 깊은 슬픔을 보았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예상외로, 소설 흑산은 정약용의 슬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는 않고있다.
대신 천주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노비, 어부등 민초들의 처참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영웅담이 도달할 수 없었던 역사소설의 한 경지를 훌쩍 뛰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