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내가 겪는 문제를
사회적인 관심으로 확대시키곤 했다.
예를 들어
불우한 가정 환경을 가진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든지
성폭행 당한 사람을 치료해주고 싶다든지
잘못된 교육을 바로 잡고 싶다든지
청년 아르바이트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고 싶다든지
지나치게 높은 대학 등록금을 바로잡고 싶다든지.
그러니까
내가 당면한 문제를
나는 항상
'사회 문제화'시켜서
언젠가는 그 일을 하리,
하고 늘상 생각하곤 했다.
중요한 것은
막상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는데는
그리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열악한 아르바이트 환경을 개선하고 싶으면
내 아르바이트 환경을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인데
그게 여의치 않으니
빙 돌아 남의 환경을 개선함으로써
대리 만족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더 쿠션이 있는 곳으로
빠져나간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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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
의 용기가 부족한 듯 싶다.
내가 일하는 곳이
조금 불안하다.
일을 하고 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 지
조금 불안하달까.
그래서 나를 채용한 사람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근로 계약서도 작성하고 싶은데
그렇게 하기가 껄끄럽고
못하겠으니까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서
나도 이런 문제를 애초에 겪지 않았으면 좋을텐데
하는 바람으로 그런 일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생 때도 그랬다.
학교의 입시 교육에 불만이 많았던 나는
그 체제에 순응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졸업해서는 이런 잘못된 교육제도를 바로 잡고
올바른 교육을 실천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막상 졸업하고 나서
내가 그런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고
취업과 스펙 위주의 대학 교육에 당면하다 보니
이제는 또 그런 것을 타파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물론
그 때마다의 관심사가
나를 구성하는 특별한 색깔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행복한 것이 먼저고
내 상황을 최선의 상태로 개선하는 것이 먼저다.
남이 해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되며
내가 나섦으로써 누군가 나를 기다리게 해서도 안 된다.
지구 상의 모든 개인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남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때 보다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뒤
남은 여력으로 남까지 돌본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한 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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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부러지게
월급에 대해서 물어보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해달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약간은 나를 주춤하게 하는
filter가 있는데
바로 '아버지 filter'이다.
이 filter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했을 경우
나에게 부당한 패널티가 돌아올 것이라는
그런 두려움을 주는 filter이다.
아버지는 내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했을 경우
성적 저하를 빙자해 때리거나
가족 외식에 나를 데려가지 않거나
가끔은 덮어두고 패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뭔가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했을 경우
보복당할 것 같은 '불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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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근로 계약서를 작성해달라고 하면
부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싫어해서
돈을 오히려 안 줄 수도 있고
뭔가 해코지를 할 것 같아서
요구를 못 하겠다.
하지만
이 filter는 가짜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내가 나의 요구를 주장한다고 해서
바로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제멋대로가 아니다.
증명하자.
해보자.
그리고 정말로 불이익이 돌아온다면
그것은 사실인 것이고
아무런 일도 없다면
이 filter는 버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