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태산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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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힘든 길을 가고 있는 걸까. 그냥 다 잊어버리고 편하게 살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이렇게 힘들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이 길을 선택해서 매일 매일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 걸까. . . 처음 시작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었다. 그 새끼와 가족인 것 마냥 같이 살 때도 항상 생각했던 것. 이 집안에서 일어난 일 내가 겪은 일에 비해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는 것. 이 집안이 너무 조용하고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모두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태연하게 행동하고 그렇게 뻔뻔하게 나를 대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새끼는 여전히 당당하고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고 있고 엄마는 나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열심히 자기 인생을 살고 있다. 뭔가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두 부모가 머리를 맞대고 지들이 상처를 준 나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마땅한 건데, 지금 이것들은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리고 아주 조용하고 정상적인 것처럼 다시 톱니바퀴는 돌고 있다. 이런 것 따위 다 부숴버릴 것이다. 이건 지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나의 침묵과 고통과 희생 아래서 나의 피로 유지되고 있는 거짓된 행복일 뿐이다. 왜 내가 가장 밑에 깔려 고통스러워 해야 하는가. . . 모두 다 바로 잡을 것이다. 너는 감방에 가서 죗값을 치를 거야.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봐온 너의 모습은 절대로 진심으로 뉘우칠 인간이 아니니까 나는 네가 죗값을 치르도록 할 거야. 엄마도 내 인생을 책임지게 할 것이다. 나를 제 때에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한 책임을 엄마 또한 마땅히 져야 할 것이다. 시작이다. 지금은 말이 안 돼. 이렇게 조용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돼. 나는 뭐야. 나는 왜 이렇게 힘든 건데. 왜 내가 힘들어야 하는 건데. 다 뒤집어 엎어버릴 거야. 모두 다 정상으로 만들 거야. 네가 가장 피눈물을 흘리고 내가 가장 행복해져야 해. 너희는 나에게 사과해야 해. . . 그렇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그렇게 되고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증거 수집을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 있을까. 엄마의 증언, 동생의 증언, 나의 증언. 그리고 당시 내가 썼던 일기 두 편. 울다에 올린 수 백 편의 일기들. 그리고 친구의 증언. 이모와 이모부가 그 새끼의 평소의 폭력성을 증언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렵다. 엄마는 모른다. 내가 얼마나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유린 당했는지. 나 밖에 모른다. 증인도 없고 증거도 없다. 무시 당하고 부인 당할까봐 너무 너무 무섭다. 그러나 사실이다. 성추행, 성폭행, 강간 등 모든 종류의 성적 폭행을 포함한다면 헤아릴 수가 없다.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씻고 화장실을 가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었으니까. 강간만 하더라도 수백 번은 될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부터 6학년 때까지. 4교시였던 매주 수요일마다 아빠는 나를 강간했다. 중학생 때는 여름 방학, 겨울 방학 때면 아침마다 한 번씩 일을 치러야 했다. 그렇게 따지면 이미 오백 번이 넘는다. 그 외에 만지고 빨고 성관계를 요구하고 자신의 성기를 나에게 보이고 나체 사진을 찍을 것을 요구해 사진을 찍은 것까지 포함하면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어서 다 끌어올려 적어두어야지. 차라리 한 번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한 번 강간 당하고 고통 받는 여성분들께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차라리 한 번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도대체 몇 번을 떠올려야 한단 말인가. 모두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많다. 찬찬히 기억하다 보면 다 떠오를 테지. 그 때의 상황 나의 반응 아버지의 표정. 모두모두 떠오를 테지. 낱낱이 밝혀서 세상에 까발려 주겠어. 네가 잘못한 거 네가 죗값 치르게 해 줄거야. 더 이상 너의 죄로 인한 고통을 내가 받지는 않을 거야. 나는 아무런 죄가 없어. 그러니까 나는 행복해야 해. 그런데 나는 지금 불행하고 힘들잖아? 그러니까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 죽어버려도 이상할 게 없어.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해? 내가 왜 사랑도 제대로 못하고 현재를 즐기지도 못하고 과거에 얽매여 살아야 하냐구. 왜. 다 털어버릴 거야. 그런데 그냥 털어버리기엔 너무너무 억울해. 그러니까 네가 너의 죗값을 받아. . . 증거로는 또 뭐가 있을까. 앞으로 녹취록을 잘 수집해야 한다. 그 새끼가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는 녹취록. 그게 꼭 필요하다. 별다른 증거가 없다. 신체적 상해를 입은 적이 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처가 없다. 그리고 그 새끼가 찍은 사진은 지금 내게는 없다. 그 새끼가 아직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진즉에 그걸 가져왔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컴퓨터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가져오지 않았는지. 그 때는 고소하고 벗어난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 같다. 그 때 써준 각서도 있었는데, 사진을 찍어주면 다시는 밤에 내 방에 들어오지 않고 낮에 집에 오지도 않고 엄마와 싸우지 않겠다는 나의 요구를 적은 각서를 쓸 것을 요구했었다. 그 새끼는 순순히 나에게 각서를 써주었다. 그러나 그 각서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얼마 동안 각서를 간직하던 나는 '이딴 게 다 뭐야!' 라며 찢어서 변기통에 버려 버렸다. 그것도 중요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었을텐데. 정액도 한 번도 체취한 적이 없고 피해 장면이 녹음되거나 촬영된 자료도 없다. 직접 목격한 이는 엄마와 동생 뿐인데 성폭행 장면을 목격하긴 했으나 강간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사람은 없다. 전에 살던 아파트 지하 주차장 CCTV 자료를 구해볼까. 매주 수요일 3시에서 4시 사이에 집에 들어왔다가 6시 쯤 집을 나선 장면이 포착되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면 어느 정도 정황에 대한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할 까봐 걱정이다. 집에 와서 잠깐 쉬다 갔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충분히 그렇게 뻔뻔하게 이야기할 사람이니까. 내 집인데 내가 못 가냐고.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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