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신기하다.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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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기를 읽어보면 나는 오빠와 사귄 지 일주일이 된 그 시점부터 이미 지쳐가고 있었고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었다. 11일째, 오빠와 처음으로 섹스를 하던 그 날, 나는 혼란스러웠고 오빠를 원망했으며 역시 강하게 헤어짐을 고민했다. '오빠 때문에' . . 그런데 중간에 길을 잃어버렸다. 자꾸만 내 탓을 했다. 내가 성폭행을 당해서 이 모양이야 내가 가정 환경이 불우해서 이 모양 이 꼴로 연애를 하고 있는 거야 오빠가 너무 불쌍해 이러면서. 그래서 돌고 돌아 결국 헤어지게 됐는데도 지금까지도 나는 나 때문에 내가 힘든 시기여서 오빠가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그런데 지난 일기들을 쭉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힘들어진 시점은 8월 이후, 그러니까 거의 공황상태가 온 게 그 때쯤. 그래서 나는 내가 공황 상태가 와서 오빠랑 제대로 연애를 못 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전혀 공황상태가 아니던 완전 연애 초기에도 나는 오빠와의 만남을 힘들어하고 있었다. 읽는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처음부터 이랬네? . . 나는 순전히 오빠에게 상처받고 서운해서 헤어진 거지 인생이 이 모양이어서 헤어진 것이 아니었다. 내가 힘들어서 오빠한테 잘 해줄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그 전부터 이미 나는 오빠에 대한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좋아하는 지 확신이 잘 서지 않고 연락이 오는 게 자꾸만 귀찮고 그다지 좋지 않고. 그런데 사귀면서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던 것 같다. 주변에 사람도 없고 점점 오빠에게 의존하게 되면서부터. . . 그런데 무서운 건 그 길 안에 있을 때는 도저히 이게 안 보인다는 거다. 그래서 다음에도 또 이러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이 된다. 그것 때문에 자꾸 오빠와의 연애를 붙잡고 있는 것 같다. 자꾸만 문제를 파헤치려고 한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이렇게 하면 달랐을까, 이런 분석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 . 답은 나와 있었다. 한국에 돌아왔던 그 시점부터. 나는 내 직관에 귀 기울이지 않았고 그렇게 먼 길을 돌아 결국에는 갈 길을 갔을 뿐이다. 오빠가 헤어짐을 결심한 건 아마 크리스마스 전 후. 그 때부터 확연히 태도가 바뀐 것을 느꼈다. 만나서도 일찍 집에 들여보내고 스킨쉽도 줄어들고. 나 또한 그랬고. 그래서 처음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럴 것 없다. 너는 한 달 동안 이별을 생각했지만 나는 너와 만나는 내내 이별을 생각했어. 하지만 노력한 거야. 내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내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 관계를 통해 성장하기 위해. 나는 우리가 좀 더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랐어. 그래서 최선을 다했던 거야. 나는 너무너무 불편했어. 네가 또 다시 질내사정을 할까봐 조마조마했지. 왜 콘돔을 쓰지 않는지 정말 모르겠는데 이 주에 한 번 만나는 너한테는 그런 걸 물어볼 수가 없었어. 나란 여자가 원래 자주 얼굴을 맞대고 신뢰를 쌓지 않으면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는 여자거든. 넌 나를 잘 몰랐던 거야. 나 조차도 나를 몰랐기에 너에게 나를 알려줄 수 없었고. 왜 나는 네가 나를 보러오지 않는 지 이해할 수 없었어. 네 모든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 그렇다고 그걸 너한테 일일이 얘기할 만큼 내가 자존감이 높진 않았어. 하지만 내가 보기에 넌 좀 평균 이하였던 것 같아. 그런 모든 것들을 내가 일일이 너에게 말해주기에는 힘들었어. 나의 첫상대로 너는 좀 까다로운 상대였달까. 나랑은 잘 안 맞았으니까. . . 대화도 안 통하고. 사실 너를 짝사랑하는 그 삼 개월 동안 우리는 참 무수히도 카톡을 하고 장난을 쳤지만 '대화'를 한 적은 없었어. 공통의 주제가 없었거든. 나는 주로 듣는 편. 너도 그리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 그러니 서로 대화를 하면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기 일쑤였지. 뭐, 어쩔 수 없지만. . . 대화를 통해 풀 수 없으니 쌓여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매일 얼굴이라도 보면 어떻게 풀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매일은 커녕 이 주에 한 번 꼴로 만나는 너에게 나는 가면밖에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었어. 차라리 그냥 처음에 헤어지자고 할 걸. 그 때 헤어졌으면 그렇게 공황상태로 힘들지 않아도 됐을 지 모르는데. . .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너와 나는 인연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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