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도 오늘처럼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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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만약 오늘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나는 대답한다. '다시 살아도 나는 오늘처럼 살 거야.' 마음이 웃는다. 후회없는 하루를 보내서 아주 좋다. 늘 이렇게 살고 싶다. 다시 살아도 오늘처럼,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하루. 최선을 다한 하루.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하루. . . 오늘은 정말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계산하지 않았고 무시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났다. 룸메이트들이 다 수업을 가서 아무도 없었다. 일어나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했다. 청소기를 밀고 바닥을 닦았다. 책상 정리도 했다. 그리고 밥을 했다. 밥을 해서 밥을 먹었고, 잠시 친구를 만나 선인장을 선물 받았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잠시 책상에 앉아 공부를 했다. 씻고 기숙사를 나섰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방문하기 위해서. 내가 전에 상담을 받았던 선생님을 뵙고 싶었다. 왠지 모르게. 그래서 약속을 잡아 놓았었고 그게 오늘이었다. 갈까 말까 또 사소한 갈등이 일었고 '그냥 가지 말까, 무서운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볍게 토스 해주고 예쁘게 옷을 입고 길을 나섰다. 가는 길에 아는 사람들을 만나서 잠깐 잠깐씩 인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즐겁게 학교를 나섰다. 그동안 상담비를 지원해주신 상담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서 작지만 빵을 이것저것 사고 우유도 사서 상담소로 향했다. 오랜만에 들어서는 상담소 오랜만에 뵙는 상담 선생님.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정말 마음이 힘들고 괴로웠는데 그게 불과 1년 전인데. 이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찾게 되니 뭔가 성공한 제자가 스승을 찾아뵙듯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 . 아주 오랜만에 상담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다른 상담소로 연계된 뒤 내게 생긴 변화에 대해서 말씀드리자 참 좋아하셨다. 아빠에게 300만 원도 받아내고 장학금도 받고 기숙사도 붙고 학교도 다시 다니고 있고. 정말 잘했다고 해주셨다. 몇 달만에 그렇게 해내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수고 많았다고.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고. 나는 칭찬을 받아서 참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정말 열심히 했구나, 스스로를 칭찬해주었다. 아빠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따졌다고 말했더니 또 잘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하기 쉽지 않다고.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해도 되니까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하라고. 당연한 거라고. 그래서 나는 또 기분이 좋았다. 상담 선생님께 그동안 느꼈던 점들을 말씀드렸다. 이제는 나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나 자신에게조차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지는 않다. 인정하고, 그 무게를 지고 싶다. 성폭행 관련된 일을 하는 것도 나에게 좋은 일이 될 것 같다, 라고. 선생님은 좋은 생각이라고 말씀하셨다. 공부를 조금 더 해서 상담소에서 상담을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런 생각을 나도 좀 하고 있었는데 그럴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현재를 살라고 그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말씀해주셨다. 상담소를 나오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벼웠다.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면서 아 이제 뭐하지 하고 생각하다가 학교에 유명한 사람이 강연을 온다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갈까 말까 하다가 가야지, 결심하고는 같이 갈 친구를 찾아서 강연을 들었다. 생각보다 좋은 강연은 아니었지만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을 조금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이 드러내고 싶으면 드러내고, 드러내고 싶지 않으면 드러내지 않으면 된다.' 상담 선생님들께 질리도록 들은 말이었는데 오늘 또 들었다. 정말 맞는 말이긴 한 건가보다 싶었다. 아직 완전히 와닿지는 않는다. 나는 아직 드러내고 싶은데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누구한테나 드러내고 싶은 걸. 그런데 누구한테도 드러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젠가 저 문장이 이해되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강연을 듣고 친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한바탕 신나게 웃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룸메이트 아이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예전 같았으면 '공부 해야되'라면서 마음이 조급했을텐데 오늘은 마음을 열고 그 아이와 대화를 했다. 정말 좋았다. 밝아보이는 아이였는데 생각보다 마음의 상처도 깊었고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만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울고 웃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고 나니까 충만한 느낌이 들었다. '누구나 힘든 일이 있구나. 밝아보인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하는 것을 경험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시를 읽고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 . 내일은 상담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목요일에는 동아리 첫 모임이 있는 날. 다음 주에는 작은 말하기 대회가 있고 그 다음 날에는 눈물도 빛을 만나면 반짝인다 북콘서트가 있다. 다음 달 초에는 해외 교류 활동이 시작된다. 하나 하나 내 길을 밟아 나가고 있다. 이 모든 실타래들이 결국은 나를 엮어줄 것이다. . . 오늘을 다시 살아도 나는 오늘처럼 살 것이다. 내일, 아니 오늘도 나는 다시 살아도 오늘처럼, 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하루를 살아야지.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면서. 후회가 남지 앟는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면서. . . 이제 내 몸을 씻어주러 가야지. 오늘 하루 수고했으니, 정성껏 씻어주어야겠다. 그리고 쉬게 해주어야지. . . 모두들 편안한 밤 되시길. 꿈 속에서 다들 행복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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