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치유일지
  hit : 2470 , 2013-08-14 19:53 (수)



밉습니다.
알 수 없는 저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가 치밀어 오릅니다.
당신이 불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내가 그 때 당신을 밀치고
문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시간을 되돌려
내가 그 때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선생님이나
경찰에게
우리 아빠가 나를 못 살게 굴어요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하고 바랍니다.

시간을 되돌려
내가 그 때 아빠에게 화를 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화를 냈지만
나는 내가 화를 냈을 때
아빠가 더 크게 화를 내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누런 눈이 무서웠고
나를 미워하는 것이 무서웠고
엄마와 싸우는 것이 무서웠고
나를 때리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점점 화를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합리화를 하게 되었지요.

괜찮아,
금방 끝나.



나는 엄마에게 말 하지 못했습니다.
왜 말 하지 못했을까요?
왜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을까요?

경찰에 신고하면
우리 가정이 깨어질까 무서웠습니다.
나 때문에
아빠가 감옥에 들어가면
엄마와 동생이 굶어죽게 되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빠를 밀치고
문밖으로 뛰쳐나갈까 고민할 때
나를 그 자리에 묶어둔 것은

내 뒷머리를 아빠가 낚아채서
나를 침대 위에 엎어뜨리고
발로 마구마구 밟는 장면에 대한 상상이었습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내 얼굴을 마구 밟을까봐
그리고 나를 못 움직이게 만들고 
섹스를 할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조용히 말을 잘 들으면
때리지도 않고
상냥하게 해주니까요.



.
.


결국은
괴롭지 않고자
고통받지 않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누구도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불행한 상황에 묶어두고
나 또한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
그 상황 속에서
최대한 불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합리화 하는 일상들이었습니다.


나는 자라면서 
내가 싫다고 하면
당신도 별 수 없다는 것을 배워나갔습니다.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걸
당신도 나만큼이나 무서워한다는 걸요.

그걸 왜 그리 늦게 알았나
정말 억울한 노릇이지만
어쨌든 나는 싫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싫다는 말은
아주 어렸을 때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당신이 방에서 나가는 대신
내 뺨을 주먹으로 때렸지요.
아니면 내 배를 발로 밟든지요.

하지만 내가 고등학생이 되니
당신이
"죽을래?"
라고 이야기해도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당신이 마음을 먹으면
나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신은
꼭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
.


어린 나는요
죽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겁니다.
엄마와 동생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겁니다.

그래서 그 모든 상황들을
혼자서 짊어지고
살았던 겁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엄마와 동생을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잃지 않는 편을 택했습니다.
내 생명과
내 친구들과
내 생활을.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선택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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