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 치유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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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습니다. 알 수 없는 저 깊은 곳으로부터 무언가가 치밀어 오릅니다. 당신이 불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내가 그 때 당신을 밀치고 문밖으로 뛰쳐나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시간을 되돌려 내가 그 때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선생님이나 경찰에게 우리 아빠가 나를 못 살게 굴어요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더라면, 하고 바랍니다. 시간을 되돌려 내가 그 때 아빠에게 화를 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화를 냈지만 나는 내가 화를 냈을 때 아빠가 더 크게 화를 내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누런 눈이 무서웠고 나를 미워하는 것이 무서웠고 엄마와 싸우는 것이 무서웠고 나를 때리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점점 화를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합리화를 하게 되었지요. 괜찮아, 금방 끝나. 나는 엄마에게 말 하지 못했습니다. 왜 말 하지 못했을까요? 왜 경찰에 신고하지 못했을까요? 경찰에 신고하면 우리 가정이 깨어질까 무서웠습니다. 나 때문에 아빠가 감옥에 들어가면 엄마와 동생이 굶어죽게 되는 것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너무 미안했습니다. 아빠를 밀치고 문밖으로 뛰쳐나갈까 고민할 때 나를 그 자리에 묶어둔 것은 내 뒷머리를 아빠가 낚아채서 나를 침대 위에 엎어뜨리고 발로 마구마구 밟는 장면에 대한 상상이었습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내 얼굴을 마구 밟을까봐 그리고 나를 못 움직이게 만들고 섹스를 할까봐 그게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조용히 말을 잘 들으면 때리지도 않고 상냥하게 해주니까요. . . 결국은 괴롭지 않고자 고통받지 않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누구도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불행한 상황에 묶어두고 나 또한 불행해지고 싶지 않아 그 상황 속에서 최대한 불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합리화 하는 일상들이었습니다. 나는 자라면서 내가 싫다고 하면 당신도 별 수 없다는 것을 배워나갔습니다.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걸 당신도 나만큼이나 무서워한다는 걸요. 그걸 왜 그리 늦게 알았나 정말 억울한 노릇이지만 어쨌든 나는 싫다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싫다는 말은 아주 어렸을 때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당신이 방에서 나가는 대신 내 뺨을 주먹으로 때렸지요. 아니면 내 배를 발로 밟든지요. 하지만 내가 고등학생이 되니 당신이 "죽을래?" 라고 이야기해도 나를 죽이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당신이 마음을 먹으면 나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신은 꼭 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 . 어린 나는요 죽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겁니다. 엄마와 동생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던 겁니다. 그래서 그 모든 상황들을 혼자서 짊어지고 살았던 겁니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엄마와 동생을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늘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잃지 않는 편을 택했습니다. 내 생명과 내 친구들과 내 생활을. 보이지 않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선택했던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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