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행 자원봉사 /오태진 수석 논설위원 (조선 만물상) │ 신문 칼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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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행 자원봉사 /오태진 수석 논설위원 (조선 만물상) 5.9 시인이자 신흥사 조실 조오현 스님이 문상 갔다가 염하는 일흔 노인을 봤다. 노인은 죽은 이를 어찌나 지극하게 매만지던지 어진 의원이 진맥하듯 했다. 염을 마치고는 끌어안고 싶어하는 눈길을 주더니 냄새까지 맡고서야 관뚜껑을 닫았다. 스님이 묻자 노인이 말했다. "40년 염을 하다 보니 남모를 정이 들었습니더. 시신이 내 가족 같기도, 나 같기도 하고, 시신에 남은 삶의 흔적을 걷어주고 나면 내 마음도 편안해집니더." 노인은 사람들 건네주는 나룻배처럼 이름 없는 성자였다. 조용히 몸과 마음 다해 일하는 삶이었다. 스님이 '절간 이야기'에 쓴 사연이다. 진도 팽목한 뒷전에서 염습을 해온 이들이 있다. 차가운 바다에 갇혔다가 뭍으로 나온 시신이 가족 만나기 앞서 정성껏 닦고 가다듬는 장례지도사다. 울며 시신 수습하느라 눈은 퉁퉁 부었고 밥도 못 넘겨 거르기 일쑤다. 전남 여러 곳에서 봉사 나와 서른 명에 이르다 이제 두어 명만 남았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자식을 단정한 매무새로 맞으라고 미용사들은 가족의 머리를 다듬어준다. 음식 수발하러 왔다가 간이 미용실을 차렸다. 하얀 커튼 두른 두 평 공간에 싹뚝싹뚝 가위질 소리만 울린다. 머리 손질이 끝나면 "고마워요" "힘내세요" 두 마디만 오간다. 진도 체육관과 팽목항에서 새롭고 참다운 자원봉사를 본다. 소리내지 않으면서 공감*진심*위로를 가득 담은 봉사다. 어제까지 연인원 2만여 시민이 온갖 궂은일을 했다. 체육관 바닥을 걸레로 닦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빨래 설거지 하고 이불 말려 털어줬다. 울다 짓무른 얼굴 다독이게 물수건 삶아 건네고 휴대전화를 충전해줬다. 입맛 돌리라고 요리사들은 햄버거 굽고 탕수육 차렸다. 처키인들은 케밥을 나눴다. 가족들을 나르느라 안산 개인택시 기사들은 연료 값과 통챙료 치르며 진도까지 400km를 내달렸다. 봉사자들은 빨랫감을 찾아다니면서도 말없이 '세탁' 팻말만 들었다. 발소리 안 내려고 조심조심 걸었다. 진도에서 배운 수칙대로다. '가족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화를 내면 조용히 듣는다. 음식은 꿇어앉듯 낮은 자세로 권한다...' 매뉴얼이 휴지조각이 돼버린 세월호 참사였지만 봉사자들은 차근차근 매뉴얼을 지켜 움직였다. 남은 실종자가 줄면서 체육관에 빈자리가 늘었다. 봉사자들은 "마지막 한 가족 남을 때까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키겠다"고 했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말하고 있다. 그것을 '진도형' 자원봉사'라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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