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들 - 내가 보낸 2014   2014년
  hit : 3088 , 2014-12-26 22:31 (금)
#1, 퇴직 사유
4월 30일, 사표를 냈지.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어.

"내가 악기라면 난 22년간 한가지 곡만 연주했던것 같아.
 이제 남은 생은 다른 곡을 연주하고 싶어"

그러나, 말하지 못한 진짜 이유는 "지쳤다"는 거.



#2, 전력질주
두렵더라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
대한민국에서 가장의 역할이 쌀을 사오는 거잖아.
또다시 미친듯이 일을 했어.

자유롭긴 했지.
그런데, 직장다닐땐  공식적으로 쉬는 날이란게 있는데 직장을  그만두니 그게 없더라구.

요일 관념이 없어졌어.
오늘이 목요일인가하고 확인해보면 월요일이더라구.
토요일, 일요일이 없었거든.

퇴직후 5일 쉰거같아.
노트북 수리한 삼일, 추석 명절포함해서 이틀.
작업 시작 오전 10시, 작업끝 밤 12시.
일주일에 하루는 밤샘.

물론 회사에 소속을 뒀지.
직원 5명인 회사의 부사장.

그런데, 중소기업은 언제 망할지 모르잖아
회사에 올인 하기엔 불안했지.
그래서 투잡을 뛰었어.
음~~~ 사실 돈도 돈이지만 다른 곡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
다시 샐러리맨 할거라면 대기업 그만둘 이유도 없잖아.



#3, 성취

(1)
정부과제를 하도급받아서 Paper work.
과거엔 대학교수들이 받아서 조교들 시켰던 일들이지.

성격상 (난, 최선주의자니깐..) 대충 못했지.
남들 대충하는 걸 날밤을 세웠던거 같아.
뜻하지 않게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받았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성과를 내는 힘은  능력이 아니라 절박함이야.


(2)
강의도 꽤 했어.
고등학교, 대학, 기업..
가릴 처지가 아니었지.
주제의 절반은 처음 해본거 였고.

아마 강사 세계의 가장 저임금 강사였을거야.
시간당 7만원에서 15만원 사이.

성현아가 세번에  5,000만원의 매춘을 했다면 난 시간당 10만원의  지식 매춘을 한셈이지
(내가  매춘 합법주의자인거 알지? 
 모든게 상품화되는  천민자본주의 세상에서 몸파는 걸 욕하는건 허위이자 가식이라고 생각해..
 마음을 파는거와 몸을 파는 거중 어떤게 더 나쁜 걸까?
 내 생각엔 매춘은 매우  정직한 직업이야)

암튼, 강의를 본격적으로 해보니  좋더라구.
가르치면서 배우는 기쁨이 있거든.
어떤 분야는 처음 해봤지만 기획서 작성, 제안서 작성,  프리젠테이션은 계속 했던 일이잖아
최소한 실무를 이야기줬어.


(3)
제안서 컨설팅..
글구 보니  별걸 다했네.
커리어의  상당 부분을 입찰 제안서 작성하고 경쟁 PT하는 일을 했다보니  내게 어떤 시각이 있더라구.
그걸 또 팔아서 쌀을 샀어.


#4, 실패
(1)
경영지도사 자격을 따고 싶었는데 떨어졌어.
1차만 합격하고, 2차는 시험장엘 안갔어.
시험보는 날, 사무실에서  일을 했지.
갔어도 백퍼 떨어졌을껄. 공불 안했거든.


(2)
회사 재정이  어려워.
월급도  4개월째 못받고 있지. 
중소기업은 납품은 해놓고 돈을 못받는 경우가 많더라.
나혼자 먹고 사는 일은 어렵지 않을듯한데,  동생같은 직원들 매달 월급주는 건 쉬운게 아니더라구



#5. 미생
TV를 거의 못보는데 미생은 몰아서 봤어.
다음달에 중소기업 신입사원들 대상으로 40시간 <기초직업능력>강의가 있거든.
듣고, 읽고, 말하고, 쓰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

강의자료로 쓰기위해서 미생을 다섯시간 분량으로 편집하고 있어.
미생을 보며 느꼈던 생각들을  수강생들과 공유하고 싶거든.

철강팀 강대리와 영업3팀 김동식 대리의 차이점..그런거.
예컨데, 두사람의 후배사원 대하는 방식 (깍듯한 존칭 vs. 형님모드)

사람들은 미생이 리얼리티가 있는 드라마라고 하는데 난 잘 모르겠더라구.
가장 리얼리티가 없는 인물은 사실 오차장이지.

중간중간 리얼리티 돋는 장면들이 있는데
오차장이 접대후 고객을 택시태워 보내고 도로변에 걸터앉아 담배를 태우는 모습.
영업3팀에서 비리로 짤리는 박과장같은 캐릭터...
박과장은 영업부서라면 어디에나 있는 인물인데, 그걸 같이 이야기하고 싶어.

미생은 드라마 제목이 주는 느낌이 좋은거 같아.
내가 완생이 아니라 미생 未生 이니까 그럴테지.
나만 힘든게 아니라는 위로도 받고...



#6. 내년에 하고 싶은 일

대학원 진학을 할려구.
세상은 넓고 고수는 왜그리 많은지.
내가 이바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박사, 교수, 기술사 이런 사람들이 팔할이 넘는 거 같아.
능력중심사회를 외치지만 실제로 강의료는 이런 기준으로 정해지더라구.
또 내 능력도 딸리구.

오십에 다시 제도권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 셈인데 
학위를 쉽게 딸 수 있으면서도 재미있었으면 좋겠어.
재미없는 일은 평생해왔으니까 이젠 그만.


내년 하반기까지 회사를 괘도에 올려놓으면  회사는  접고 프리랜서로 나설려구.
밥벌이도 중요한데.....
진짜 다른 곡을 연주해보고 싶어졌어.


그리고, 내년엔 경영지도사도  꼭 딸려구..



#7. 고통총량의 법칙
회사에 있던,  회사를 나오든 고통의 총량은 같은 거 같아.
그런거라면  하고싶은 일을 하다 죽기.


#8. 지식노동자 .
이런 말 할 자격이 아직 내겐 없지만
" 치열하게 직장생활을 했다면,
  마흔중반 이후 삶은  직장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을 풀며 홀로 살아가야 하는거 아닐까. 
  지식 노동자로"

그렇게 믿고 싶다. 



백지...  14.12.26 이글의 답글달기

와.. 대단하십니다..

마당쇠  14.12.27 이글의 답글달기

형님이 작성해 놓은 글을 보니 많은 공감이 가네요. 그 고뇌의 손길로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쓰고 나니 마음이 다소 후련하죠? 저 또한 요즘 많은 고민이 되네요?? 직장하면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까?라는 고민. 물론 사업적인 것은 절대 아니고요. 지식의 배고픔이라고나 할까요!! 항상 형님을 응원합니다. 화이팅! 하세요..

프러시안블루  14.12.27 이글의 답글달기

넌 나의 니 나이때보다 훠얼씬 잘하고 있으니 힘내렴

볼빨간  14.12.27 이글의 답글달기

#6. 고통총량의 법칙에 잠시 눈을 고정하게 되네요.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받는 압박은 정해져있다라는 뜻이죠?
치열하게 살다 결국 때가 되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라.
가기 쉽지 않지만, 발걸음을 내딛는 자의 용기가 보여주는 풍경을 가보지 못한 자는
끝까지 알 수가 없겠죠.. 생각하게 만드네요. ㅎㅎ
올해의 프러시안 블루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년의 블루님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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