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 2015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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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하게 더렵혀지는 인간들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 아들 녀석 고등학교 교지에 동문 소설가 김훈이 기고한 글 일부 - 주말 1박2일로 경기도 양평을 다녀왔다. 여름휴가인 셈이다. 양평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곳. 두물머리.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개의 물이 만나는 곳. 이 평화롭고 순한 곳을 볼때마다 항상 마음이 애잔하다. 정약용과 형제들의 슬프고 참혹한 가족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약용과 그 형제들은 이곳 두물머리에서 태어나서 결혼을 하고, 행복한 시절을 보낸다. 그들은 이땅에 가장 먼저 천주교를 받아들인 선구자였고 당대의 가장 앞선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정조사후 본격적인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짧은 행복이 끝난다. 조선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은 정약용의 매형이었다. 정약용은 뼈와 살이 튀는 고문속에 매형을 '삿된 무리'라며 실토하고 그간의 행적과 비밀회동 장소를 적극적으로 고해 바친다. 이승훈 또한 정약용이 자신에게 세례까지 받았음을 밝히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가족끼리 죄를 고해 바치던 상잔의 끝은 처참했다. 이승훈은 배교까지 하였으나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고 다산의 누님이자 이승훈의 처는 제주관가의 노비가 되었고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령이 내려졌으며 정약종은 신앙을 지키며 순교한다. 겨우 목숨을 건져 강진으로 유배를 간 정약용은 끝끝내 이 치욕에 대해 침묵한다. 그러나, "환멸은 납가루처럼 몸에 쌓였을 것이고" 자책은 "암세포로 굳어졌을" 것이다. 후세의 두물머리 여행자는 한 인간의 상처와 침묵과 고통을 헤아려 보고 "살아남기위해 불가피하게 더렵혀지는 인간은 아름답다"는 김훈의 말을 곱씹어 본다. 난 상처있는 인간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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