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의식화 │ cinq.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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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미래의 남자친구에게 성폭력과 관련된 나의 경험과 현재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뮬레이션을 하다가, 놀라운 발견을 하나 했다. 요즘 관심이 생긴 오빠가 있어서 혼자 이것저것 상상 중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내 성폭력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이미 전에 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상대방의 질문은 '전에 말했던 성폭력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 있어?' 였다. . . 나는 상상 속에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 경험 자체에 대해서는 지금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나중에 차차 이야기할게.' 그리고 내가 고소를 했던 과정, 그로부터 내가 얻은 것들, 지금의 내 가치관 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 경험에 대해 자세히 묻지는 않아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것과 관련된 지금의 상태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예를 들어, 스킨쉽이 싫어? 같은 질문.' 상대방은 묻는다. '스킨쉽이 싫어?' 나는 베시시 웃으며 '아니 좋아'라고 대답한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스킨쉽 자체는 좋아하니까. '스킨쉽 자체는 좋아. 정말이야. 다만 싫어하는 스킨쉽이 있다면, 나를 못 움직이게 만드는 거? 내 팔을 잡는다거나, 입을 막는다거나.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 그리고 음, 섹스가 싫지는 않은데- 밝을 때 하는 건 좀 별로 안 좋아해.' 밝을 때! 내가 밝을 때 섹스하는 걸 싫어한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그리고 내게 불편함을 주었던 앞전 남자친구와의 섹스 모두, 주변 환경이 밝았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왜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를 해도 불편할까? 라는 질문에 한 가지 답변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할 때는 늘 낮이었다. 내 벗은 몸, 아버지의 벗은 몸 그리고 그가 하는 행동과 그것이 내 몸에 행해지는 모든 것들을 내가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대낮이었던 것이다. 남자친구와의 섹스도 늘 밝을 때 했다. 낮은 아니었지만, 첫 경험도 DVD 방이었어서 옆에 큰 스크린이 켜져있었다. 덕분에 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펜션에서 불을 켜놓고 한다든지, 낮에 차에서 한다든지. 그래서 나는 섹스만 하고 나면 그게 그렇게 생각하기가 싫고 불편했던 것이다. 아 척추에서 전율이 흐른다. 내가 의식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 건져올린 느낌. 그래, 또 다른 사람과 했던 섹스는 상대적으로 덜 불편했다.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 똑같이 좋아했고 비슷한 정도의 애무와 삽입 시간이었다. 다만 이 때는 집이었기 때문에 좀 어두웠었다. 서로를 보기에는 충분했지만 그게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과의 섹스조차도 불편했던 건, 집에 어머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늘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하는 긴장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했던 내게는 또 하나의 불편함이었던 것이다. 섹스와 관련된 나의 트라우마에 영향을 미치는 trigger 들을 포착한 것 같아서 기분이 정말 좋다. 그 전에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그냥 나는 성폭력 경험이 있어서 섹스가 불편하다, 는 너무 단순한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앞으로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혹은 앞으로 더 많이 섹스를 해야 한다는, 양적인 해결책밖에는 낼 수 없는 너무나 단순한 인식이었다. 그러나, 내게 그런 트리거들이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그 구체적인 요소들을 다뤄나가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을 위해서는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던 그 장면을 다시금 떠올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내가 어떤 상황에 있었고 어떤 부분에 어떤 감정을 느꼈었는지를 알아야 현재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 . 정리하자면, 현재 발견한 트리거들은 다음과 같다 빛(또는 소음) 긴장(누군가에게 들킬 수 있는 상황) 확실히 이 두 가지만 없어도 훨씬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다음에 누군가와 섹스를 하게 될 때 이 부분들을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되도록 어두운 곳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 .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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