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나무를 사랑한 사람 (이순원)   2015년
  hit : 1253 , 2015-09-19 18:38 (토)
소설가 이순원의 글을 읽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필사하다.(-내생애 가장 따뜻한-  111~122쪽)


열세 살에 결혼한 어린 신랑이 있었다. 집안이 매우 가난한 데다 아버지마저 병이 들어 일찍 살림을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신부는 열두 살이었다. 논밭은 없고, 오래 전에  나무를 모두 베어낸 커다란 민둥산 하나가 남은 재산의 전부였다. 다행히 그 산에 밤나무 몇 그루가 서있었다.

한 집안의 살림을 맡은 어린 신랑은 그해 가을, 자기만큼이나 어린 신부와 함께 그 산에서 밤 일곱 말을 주웠다. 모든 물건값이 쌀로 계산되거나 쌀값과 비교하여 정해질 만큼 쌀이 귀하던 시절인데도 밤값은 늘 쌀값보다 비쌌다.

"여보. 우리 이 밤을 팔아 쌀을 사요"
어린 신부가 말했다
"안돼. 그럴 수 없어"
"그러면 쌀보다 더 많이 살 수 있는 콩과 보리, 감자, 옥수수를 사요"
"아니, 그럴 수 없다니까"

어린 신랑은 밤 일곱 말 가운데 벌레가 먹거나 알이 잔 것 두말을 따로 골라내 그것만 아내에게 주며 다른 식량을 바꾸는 데 보태 쓰라고 했다.

"나머지는 어쩌려구요?"
"글쎄, 그건 두고 보면 알게 돼. 우리가 어리지만 결혼을 했으니 이제 우리 스스로 잘 살아야 해"

어린 신랑은 아무도 밤을 건들지 못하게 부엌 바닥을 파고, 그곳에 가마니째 밤 다섯 말 모두 갈무리했다. 식량이 부족한채로 겨울을 보내며 어린 신랑도 배가 고팠고, 어린 신부도 배가 고팠다.

"여보, 이제 그만 우리 저 밤을 꺼내 팔아요"
"내년부터 주운 밤은 모두 먹고 팔고 하더라도 올해 주운 저 밤은 한 톨이라도 건들면 안 돼"

무슨 고집으로 그러는 것인지 신부는 신랑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식량이 떨어져 도토리를 물에 불린 것을 먹고 언 땅을 헤치고 냉이뿌리와 칡뿌리를 파먹으면서도 부엌 바닥에 갈무리해놓은 밤만은 건들지 않았다.

이윽고 봄이 왔다. 신랑은 지난 가을 땅 속에 묻어 두었던 밤 다섯 말을 꺼내 어린 신부와 함께 오래전 나무를 베어버린 다음 아무것도 나지 않는 민둥산에 심었다. 놀란 건 신부가 아니라 동네사람들이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면서 민둥산에 밤 다섯 말을 심는 어린 신랑을 비웃었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서도 마을 사람들은 어린 신랑을 비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여보게 새신랑. 그래, 작년에 심은 밤은 많이 땄는가?"
"아니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딸 날이 있겠지요."
"자네는 그 밤 다섯 말이 아깝지도 않은가? 나 같으면 그냥 먹고 말았겠네"
"먹었다면 벌써 거름이 되고 말았겠지요"
"아무리 봐도 자네, 철없는 짓을 했네"
"그거야 더 두고봐야 알겠지요"

5년이 지날 때에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그 산에서 밤을 땄는가?"
"아니요.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다 보면 언젠가는 딸 날이 있겠지요"
"글쎄, 그럴 날이 있을까? 그러면 자네 앞에 있는 내 손에 장을 지져 보이겠는데 말이야"

밤을 심은지 10년이 되었을 때 비로서 마을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다.  민둥산을 가득 채운 어린 밤나무에 밤송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했다.

나무를 심은 지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났을 땐 매년 그 산에서 따는 밤농사만으로도 동네에서 가장 큰 부잣집의 일 년 전체 농사보다 더 큰 수확을 올렸다.

그때의 어린 신랑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아들을 나았다. 어린 신랑은 할아버지가 되어 손자들에게 그때의 일을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밤나무 숲을 보고 놀라지만 그건 놀랄 일이 아니란다. 그래서 처음엔 다들 놀라기는커녕 놀리기만 했던 일이고"
"그래도 우리에겐 놀라워요.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인 것도 자랑스러워요"
"애들아. 그것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밤 한 톨을 화로에 묻는 것과 땅에 묻는 것의 차이란다. 화로에 묻으면 당장 어느 한  사람의 입이 즐겁고 말지만, 그걸 땅에 묻으면 나중에 거기에서 일 년 열두달 화로에 묻을 밤이 나오는 게야"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저마다 어른이 된 손자들이 해마다 추석이 되면 할아버지가 지으신 고향 옛집에 모인다. 할아버지 산소는 밤나무가 그득한 밤나무 산에 있다.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들은 이제 모두 할아버지처럼 고목이 되어 쓰러지거나 몸 한쪽이 기우뚱하게 썩어들어가고 있지만, 그 나무에서 떨어진 밤알들이 다시 온 산을 젊고 어린 밤나무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 어서 오너라. 올해도 너희들이 나를 찾아왔구나"
할아버지가 그 길숲에 발갛게 떨어진 밤알로 손자들에게 인사를 한다. 돌아가신 다음에도 그 산에 나무가 되어 아주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땅 위에 계시는 것이다.




사람들은 "밤나무 할아버지" 애기를 내가 지어서 쓴 것이 아닌가 여길지 모르지만 이것은 실제 내 할아버지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인 1896년 독립신문이 창간되던 해, 그러나 그런 세상 소식조차 제대로 전해들을 수 없는 강원도 대관령 아래의 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나셨다. 열세 살에 결혼을 하고, 그 다음 해,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던 해에 온 산에 밤 다섯 말을 심으셨다. 할아버지가 온 민둥산에 밤나무를 심은 일과 나라를 빼앗긴 일은 서로 상관없는 일이긴 하지만, 나는 그 일도 참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는 일이야 말로 나라를 사랑하고 후손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밤나무 말고도 참 많은 나무를 심으셨다

할아버지는 집 주변의 빈터마다 앵두, 매화, 살구, 복숭아, 자두, 포도, 사과, 배, 대추, 호도, 밤, 감, 모과, 석류나무를 심었다. 지금 열거한 것은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들이 꽃을 피는 순서가 아니라 열매가 익는 순서를 따라 적은 것이다. 꽃은 앵두나무보다 매화나무가 먼저 피지만, 열매는 앵두나무가 더 먼저 빨갛게 익는다. 자두나무를 열매가 큰 것과 작은 것 등 여러 종류 구별하여 심었듯 복숭아 나무도 천도복숭아와 털복숭아 나무를 구분하여 두 종류를 심으셨다. 

봄이면 늘 나무를 심는 할아버지에게 학교에서 배운 대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어느 철학자의 애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주 애기를 듣고 빙긋 웃으시더니 "그 나라에도 나 같은 늙은이 하나가 있었던 모양이구나"하셨다.

어느 잡지에 할아버지의 밤나무와 자두나무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떤 독자가 이런 편지를 보내왔다. 골프왕 타이거 우즈처럼 인터넷에서는 '우즈'라는 이름을 쓰는 독자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이 쓰신 밤나무 할아버지에 대한 글을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
    고 난 다음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서 메일을 씁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고,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의 소설을 프레데릭 백이 
    에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인데, 어쩌면 선생님도 벌써 아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회사에서 교육받으러 갔다가 교육
    자료로 본 것인데, 너무 인상적인 이야기라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직 안 보셨으면 선생님도 꼭 한 번 보세요. 그리고 늘 건강하세요
                                                                        - 우즈 


그래서 나는 소설보다 먼저 그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랬다.

1913년 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어는 산악지대를 장기간 여행하게 되었다. 프로방스 지역에서 올라가는 알프스의 고지대였다. 그곳은 야생 라벤더 말고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황무지로서 옛 마을의 흔적만 있을 뿐, 샘터조차 말라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초여름 날씨에도 버려진 마을을 훑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는 먹이를 먹다 빼앗긴 짐승의 울음소리와 같았다.

나흘째 되는 날 어떤 사람을 만났다. 서른 마리의 양을 치는 그는 내게 호리병박의 물을 마시게 해주었고, 고원의 우묵한 곳에 자리 잡은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거기엔 깊은 자연 우물이 있었다. 그의 집은 정갈하였다. 돌로 지은 지붕도 단단해 그안에서는 바람도 잠잠하게 느껴졌다. 엽총은 잘 기름칠되어 걸려 있었고, 난로엔 수프가 끓고 있었다. 혼자 사는데도 그의 옷차림은 매우 단정했다. 그의 성격을 보여주듯 해진 곳을 기운 자국도 아주 꼼꼼했고, 단추 하나 떨어지거나 느슨하게 달려 있는 것이 없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대게 그렇듯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개도 주인을 닮아 조용했다.

식사후 양치기는 작은 자루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도토리를 쏟아냈다. 그는 도토리를 하나하나 매우 꼼꼼하게 살피며 상한 것과 온전한 것을 가렸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그는 자기의 일이라고 했다. 백 개의 흠없는 도토리를 골라낸 다음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그는 양떼는 개에게 맡긴 다음, 저편 황무지로 가 쇠 지팡이로 구멍을 뚫고 거기에 물에 불린 도토리 하나를 넣고 흙은 메웠다. 나는 이것이 당신의 땅이냐고 물었다. 그는 그런 것엔 관심 없이 백 개의 도토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심어나갈 뿐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그는 또 도토리를 골랐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10만개의 도토리를 심었는데, 그 중에서 2만 개가 싹을 틔웠으며, 다시 그 중 절반은 다람쥐가 갉아먹거나 다른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일로 없어져버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다 해도 전에는 나무라고는 없던 곳에 만 그루의 참나무가 자랄 것이다.

그제야 나는 양치기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쉰다섯이라고 했다. 이름은 엘지아 부피에. 전엔 평지에 농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뿐인 아들과 아내를 잃은 다음 조용한 산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이곳이 나무가 없어 점점 죽어가고 있으며, 또 달리 할 일이 없기에 도토리 심는 일이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앞으로 삼십 년 후면 2만 그루의 참나무가 굉장한 숲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셔서 삼십 년 동안에 더 많은 나무를 심는다면 지금 뿌리를 내린 만 그루의 나무는 바다에 물 한 방울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다음 날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나는 5년간 전쟁터에 나가 있었다. 전쟁의 갖가지 참상을 겪은 나는 제대 후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충동에 끌려 예전의 고지대로 향했다. 황무지는 이미 숲이 되어 있었다. 그가 처음 도토리를 심어 가꾼 참나무는 십 년이 되어 내 키보다 컸다. 숲은 세 구역이나 되었는데, 제일 넓은 곳은 폭이 무려 11킬로미터나 되었다. 1915년에 그는 자작나무도 심었다.

그의 인격에 감동한 나는 1920년 이후로 매년 그곳을 찾아갔다. 산림관청의 관리들은 숲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신기해하며, 그 숲을 일군 부피에에게 '저절로  자라난 자연의 숲'에 산불을 내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나중에 시찰 나온 정부 대표단 역시 '저절로 자라난 자연의 숲'의 아룸다움에 넋을 잃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한 때 목탄차의 연료 공급을 위해 숲이 파괴될 위험에 처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그 위기는 숲이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나무를 베어 오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어 비켜갈 수 있었다. 부피에는 그런 일도 모른 채 묵묵히 나무 심는 일을 계속했다.

세월이 흘러 1945년에 나는 다시 놀라운 광경을 그곳에서 보았다. 예전에 아무도 못 살고 떠났던 그곳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오진 한 사람의 육체와 정성만으로 오래도록 버려진 황무지를 다시 평화와 풍요의 땅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나중에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까지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한 사람 덕분에 새로운 낙원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 엘지아 부피에는 1947년 여든아홉 살의 나이로 바농에 있는 요양원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나는 소설은 다음에 구해 읽어보기로 하고, 두 번이나 그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그것을 두 번 보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와 엘지아 부피에 사이에 재미있는 공통점 하나를 발견했다. 계산을 하면 할아버지는 1896년 태어났고, 엘지아 부피에는 1860년에 태어났다. 엘지아 부피에가 할아버지보다 서른여섯 살이나 많았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민둥산에 밤을 심던 해와 엘지아 부피에가 황무지에 처음 도토리를 심던 해가 모두 1910년인 것이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일찍 살림을 맡기 위해 결혼한 다음 열네 살이었고, 엘지아 부피에는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잃고 산 속으로 들어와 여러 해를 보낸 다음 쉰 살이었다.

할아버지가 심은 밤나무와 엘지아 부피에가 심은 참나무는 같은 종류의 나무는 아니지만, 밤과 토토리만큼 다르면서 또 밤과 도토리만큼 서로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잎도 비슷하지만 나무가 커가는 모습과 나무의 굵기와 나무의 자연 수명도 비슷하다.

아마 엘지에 부피에가 가장 초기에 심은 나무 가운데, 너무 늙어 다른 어린 나무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어 일부러 베어내지 않았다면 아직 살아 있는 나무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집 밤나무 산에 아직 그런 나무 몇 그루가 자신의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그 산에 퍼져 있는 모든 밤나무들의 할아버지처럼 우뚝 서 있다.

1910년 서로 다른 목적으로이긴 하지만 엘지아 부피에는 알프스 고지대의 황무지에 참나무를 심고, 할아버지는 오래된 유산과도 같은 가난을 벗어던지기 위해 조상의 산소가 모셔진 민둥산에 밤 다섯 말을 심었다.

그런 엘지아 부피에의 이야기를 쓴 장 지오노의 소설이 우리나라에 더 일찍 번역되어 소개되었더라면, 그리고 내가 더 일찍 그걸 알았더라면 할아버지에게 애기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장 지오나가 엘지아 부피에의 애기를 쓴 것은 1953년의 일이고, 할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떠나신 것은 그보다 27년후인 1980년의 일이니까.  우리나라에 일찍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오고, 또 내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에 밤나무 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로 찾아가면 하늘나라에서라도 할아버지가 엘지아 부피에를 먼저 찾아보라고 말씀드려야 겠다. 서로 말이 다르더라도 나무를 많은 심은 사람들은 또 그런 사람들끼리 통하는 마음이라는게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꼭 그분을 찾아보시라구요.
이름은  엘, 지, 아, 부, 피,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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