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숙제 │ six/sep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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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약약강. 흔히는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한 사람을 비판하기 위해 쓰이는 말이다. 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이 말을 나를 정의하는 데 쓰고 싶은데, 나 역시도 강약약강이다. 물론 힘의 논리로서가 아니라 내 자존감이나 자신감의 정도에 대한 지표랄까? 나보다 자존감이 강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 본연의 모습이 나오지를 않고 뭔가 주눅이 든다. 하지만 나보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을 만나면 귀신 같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내 본연의 모습이 활개를 친다. 여기서 내 본연의 모습이란, 그냥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다. 웃고, 농담하고, 활발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 사실 잘 생각해보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 중에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 그렇게 없다. 내가 기가 센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일면 내 기가 세기 때문도 있다. 그래서 좀 센 사람과 함께 있으면 불편하고 계속 부딪힌다. 내가 눌러버리고 싶은 욕심 때문에 자꾸 사소한 것에서부터 경쟁을 하게 돼서. 그래서 아주 친한 사람 중에는 기가 센 사람이 그닥 없다. . . 여기서 내가 아쉬운 것은 기가 세서 아주 친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레 겁을 먹고 그 사람들과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내가 아주 고치고 싶어하는 습관, 혹은 자동적 사고 중의 하나는 내가 무서워서 친해지지 못하거나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저 사람은 달라. 나랑은 친해질 수 있는 부류가 아니야' 라고 방어적으로 합리화하고 피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저 사람이 기가 세고 나보다 자존감도 높아 보여서 다가가기가 어려워, 라고 그냥 인정하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다른 식으로 방어 기제를 써버리는 것. 그건 문제의 해결을 요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그 사람들의 기에 눌려 있는 건 그들이 기가 세다기보다는 나 스스로가 나를 누르고 있는 것인데, 자꾸 '나랑은 달라'라는 '다름'의 표현으로 그 본질을 흐리게 되면 내가 느끼고 있는 위계에 의한 압박감 같은 게 가려지기 때문이다. 분명 나랑은 다르기 때문에 교류하지 않을 사람도 있다. 가치관이 다르거나, 생활 패턴이나 성격이 다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이전에, 내가 무서워서(여기서 무섭다는 것은 나보다 기가 세거나 자존감이 세거나, 혹은 더 나은 사람인 것 같아서)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과는 분명히 구별된다는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고 싶다. 관계에 있어서 방어 기제를 안 쓰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방어기제를 쓰는 순간의 나를 포착해내는 게 먼저겠지. 앞으로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 이런 종류의 방어기제를 쓰는 지 포착해봐야겠다. 재미있는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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