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랑-징그러움, 소거 │ 연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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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퀴어퍼레이드에 다녀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하나 같이 멋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유롭게 사랑할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 그 속에 있으면서 '자유'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사랑'에 대한 열정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 . 나는 사랑, 관계, 그리고 연애와는 조금 어색하다. 어찌어찌해서 연애를 한 두 번 해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연애에 실패하는 건 인류 공통의 일이니 그닥 특별할 것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나는 늘, 저 주제들을 떠올리면 어색한 기류가 감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지금 연애를 하고 싶은가? 사실 그다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다만, 안 하고 있는 게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 다들 하는데, 나는 왜 안 하고 있을까? 나한테는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라는 고민이 들어서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연애를 안 한다는 것 자체로 별로 불편함이 있다거나, 결핍이 있지는 않다. 반대로 '왜 안 불편하지? 왜 결핍감이 없지?'라는 것에 대한 의아함이 있을 뿐. 그렇다면 첫 번째 질문, 내가 지금 연애를 안 하는 것은 진짜로 연애에 관심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교묘하게 사랑이나 연애로부터 숨고 있으면서 '나는 관심 없어'라고 쉴드를 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전자라면 나는 그닥 문제가 없다고 본다. 꼭 연애를 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후자라면, 생각해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친구 관계에 있어서 내가 학창시절에 저와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친구는 필요 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진정한 친구 한 두 명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난 후에 나는 내가 그 시절, 친구를 사귀는 것이 두려워 정말 열심히도 합리화를 하고 살았구나,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나는 늘 친구를 원했다. 그런데 친구를 사귀기가 두렵고 내 비밀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내가 못 생긴 것이 싫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봐 무서워서 '나는 친구 같은 거 필요 없어!' 라고 소리 치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저 문제들을 조금 해결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보니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것, 함께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연애와 관련해서 계속 고민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내가 어떤 종류의 두려움으로 인해 계속 그것을 피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무관심'으로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로 인해 내가 누릴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관계의 풍요로움과 어떤 '아름다움', 혹은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초조함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알아서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게 내가 자꾸 이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내가 친구관계에서 그랬듯, 연애 관계에서도 똑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람(연인)을 사귀기가 두렵고 내 비밀이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내가 못 생긴 것이 싫고 연애 상대가 나를 싫어할까봐 무서워서 '나는 연인 같은 거 필요 없어!' 라고 소리 치면서. . . 사실 나에게 자연스럽게 연애의 기회가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전에는 내가 매력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분명 나와 만난 사람들 중 일부는 나에게 관심과 매력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장점과 매력을 갖고 있어서, 객관적으로 '잘나지' 않았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호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지만 일단 나부터 그런 기류들에 대한 여지를 단 1만큼도 주지 않기 때문에 다가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말인데 이제야 진심으로 이해가 됐다. '하나한테는 다가가기가 힘들어'라는 게 무슨 말인지. 그렇다면 내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내가 주황색에 관심이 없는 것과 같은 '중립적 무관심'일까? 아니면 '트라우마적 무관심'일까? 사실 나의 가설은 '트라우마적 무관심'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응 고마워. 근데 나는 관심이 없어.'라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니라 '징그럽'기 때문이다. . . 물론 실제로 어떤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질색팔색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면 일단 기분은 좋다. 하지만 양가적으로 뭔가 징그럽고 깨림칙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상상의 인물과의 로맨스는 꿈꾸지만 실제로 누군가 나에게 그런 관심을 보이거나 한다면 나는 그게 너무 징그럽다. 이게 내가 사랑이나 관계, 혹은 연애에 대해 중립적으로 무관심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다. . .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왜 징그러울까? 아까 말했듯이 트라우마일 거라고 본다. PTSD까지는 아닌데, Trigger 정도라고 할까? 그리고 그 근원에는 역시 아버지가 있다. 전에도 한 번 말했듯, 내가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20년 동안 나는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강제적으로 '연애'라는 관계 속에 놓여있기도 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나를 성폭행하면서도 '네가 좋아서 그런다', '사랑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학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가 나에게 '나는 네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 내 욕구만 채우면 그만이다. 너는 물건이다.' 라는 태도를 보였다면 나는 아마 지금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어떤 '집착'까지 보였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건 그것대로 안 좋은 일이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늘 내게 자신을 좋아해줄 것을 갈구했으며, 강요했다. 둘이 남게 되면 그는 내게 묘한 눈빛을 보내며 키스를 하려 했고, 중학생 때는 울면서 내게 '네가 너무 좋은데 어떡하면 좋으냐'라고 말했다. 나를 성폭행 할 때는 내 이름을 부르며 '사랑해'라고 말했고, 폭력으로 나를 굴복시킨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부드럽게 다뤘다. 내가 울면서 누워있어도 아버지는 나를 애무하며 '좋아?', '어때?'라고 묻곤 했다. 어릴 때는 이런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그저 아버지가 '또라이'이거나 '사이코 패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그의 심리와 행동 기제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는 어린 딸을 상대로 혼자서 연애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 관계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 나는 그 안에서 수동적이든, 강제적이었든 어쩄든 연애의 '대상'이 되어 있었고, 은연 중에 그런 위치가 내 자리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때는 그를 동정하기도 했고, 내 몸은 그의 혀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내게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았으리라.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들이니까. . . 결국 나의 첫 번째 연애 상대는 아버지였던 것이다. 비록 그 관계가 처음부터 끝까지 강제적이며, 폭력적이었고 단 한 사람만의 의지에 의한 것이었다고 해도. 나는 어렸음에도 그 본질을 정확하게 느끼고 있었고 그런 점들이 '역겨웠'으며, '징그러웠'던 것이다. . . 그렇다면 나는 이제 또 다른 인지치료와 행동치료를 스스로에게 시전할 때가 왔다. 이전에는 사람-폭력-공포의 조건화를 끊는 작업을 했다면, 이제는 사람-사랑-징그러움의 조건화를 끊는 작업을 해야한다. 사랑은 징그러운 것, 사람과의 관계는 징그러운 것이라는 14년 동안 학습된 이 감정과 자동적 사고를 이제는 풀어버리고 싶다. 학습된 감정을 소거하는 데 가장 좋은 것은, '노출'이다. 조작적 조건화의 소거 방식에 따라 부정적 자극의 정도를 점점 약하게 만들고, 고전적 조건화의 소거 방식에 따라 긍정적 자극과 연결시키는 빈도를 증가시키기. (체계적 둔감화, 역조건 형성) 그렇다면 결국은 실제로 연애를 해보는 것이 좋다. 내가 사람에 대한 공포를 끊어내기 위해 실제로 사람들을 만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실제로 공포의 정도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고, 폭력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과 관계가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재학습'하게 되면서 기존의 조건들이 소거되었던 것이다. 연애도 마찬가지. 사랑, 관계, 그리고 연애에 많이 노출되면서 그 징그러움의 정도를 약화시키고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징그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재학습'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징그럽다고 여겼던 것은 그것이 비정상적인 감정이었고, 폭력적이고 반인륜적인 방식의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랑도 많다. 옳은 사랑도 많다. 그런 예들을 배워나가보도록 하자. . . 글은 복잡하지만 실천 방안은 간단하다. 교환학생 가서 소개팅을 해야겠다. 여의치 않으면 교환학생에서 돌아오면 바로 소개를 받아야지♡ 소개를 받아서라도 사랑과 관계, 연애에 익숙해지고 나면 점점 나아질 것이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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