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의 자살 │ six/sep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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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 된 이야기인데, 급작스럽게 닥친 일인데다가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겹쳐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계속 마음 속에 찌꺼기로 맴돌았는데, 한 번 정리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지난 7월 말이었다. 호주에 갈 준비에 한창이던 와중에, 친구와 강릉으로 여행을 갔었다.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해가 진 저녁 시간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쇼파에 누워 뒹굴거리며 친구와 카톡을 하면서 1시간 가량을 보냈을까, 할머니께서 돌아오셨다. 할머니는 돌아오시자마자 삼촌이 지내시는 안방 문을 열어보시더니, 하루 종일 문이 잠겨 있다며 문을 열어보라고 하셨다. 그 때 야간 일을 마치고 방에서 잠을 자던 동생이 깨어서 나왔고, 나와 동생은 안방에서 인기척이 나는지 확인해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고, 안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핸드폰이 방에 없는 걸 보면 나가신 것 같다고, 별 일 없을 거라고 할머니를 안심시켰지만, 할머니는 전 날 밤부터 문이 잠겨 있는 게 아무래도 불안하시다며 한사코 문을 따라고 하셨다. 열쇠가 없었기에 결국 동생이 주방에서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문을 열었다. 언뜻 바라본 방 안은 어두웠고, 화장실에서 흘러나온 빛이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침대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방 바닥에는 검은 비닐 봉지가 떨어져 있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나는 방을 나왔고 뒤이어 들어간 동생이 깜짝 놀라며 뛰쳐나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고 들어가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불안한 예감이 들었던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갔고, 방문 쪽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화장실 안을 들여다보니, 삼촌이 서 계셨다. 언뜻 보니 목을 매신 것 같았다. 일단 깜짝 놀란 나 역시 방에서 나와 동생과 할머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삼촌이 화장실 문에 기대어 서있다고. 동생은 이미 죽었다며 다시 들어가지 말라는 말만 계속 되풀이했고 할머니는 서있으면 살아있는 것 아니냐고 계속 물으셨다. 동생이 거실 화장실에 들어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해서, 결국 나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삼촌은 화장실 문에 기대어 서있는 것이 아니었다. 화장실 문에 목을 맨 채 문에 걸쳐져 있는 것이었다. 발바닥이 땅에 닿아있어서 서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잠시 동안 줄을 끊어야 하나,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도대체 어떤 상황인지 알기 위해 상황을 관찰했다. 삼촌은 정확히 화장실 문의 안쪽 손잡이에 노끈을 묶고, 문 건너편으로 줄을 넘긴 뒤, 고리를 만들어 그 고리로 목을 맨 상태였다. '삼촌' 하고 부르며 몸을 흔들었을 때, 내가 잡았던 삼촌의 날개뼈는 정말 딱딱하고 차가웠다. 그리고 몸은 마네킹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마저 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손과 발은 보라색이었고, 얼굴색은 백지장처럼 하얬다. 숨도 쉬고 있지 않았다. 결국 삼촌이 돌아가셨다는 판단을 한 나는, 다시 방 밖으로 나와 할머니에게 삼촌이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했고, 할머니는 울기 시작하셨다. 동생은 아직도 화장실에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가지고 와 먼저 119에 신고를 했다. 삼촌이 목을 매고 돌아가신 것 같다고. 구급대원은 심폐소생술을 하시겠냐고 물어왔고, 나는 이미 온 몸이 딱딱하고 숨을 쉬시지 않는다고 대답했더니, 그러면 가만히 계시라고 했다. 뒤이어 엄마와 이모에게 전화를 한 뒤, 잠옷 차림이었던 나는 옷을 챙겨입었고, 곧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삼촌의 상태를 살펴본 구급대원들은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서 가망이 없다고 했고, 시신 보존을 위해 바로 목줄을 끊지 않고 경찰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이모와 이모부가 먼저 집으로 오셨고, 나는 경찰에게 어떻게 삼촌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할머니와 동생과 같이 이모네 집으로 갔다. 그 뒤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고, 정신없이 장례식을 치렀다. 장례는 오래 치르지 않았다. 삼촌이 핸드폰 연락처도 다 지워버려서 부고를 알릴 사람도 없었고, 가족들만 찾아오는 조촐한 장례식이었다. 이혼 한 뒤 왕래가 없던 삼촌의 아들인 사촌오빠가 많이 울었다. 경찰서에서는 내 동생이 의심을 많이 받았다. 동생이 낮 동안 하루 종일 집에 있었기 때문에, 혹시라도 삼촌을 살해한게 아니냐는 정황을 가정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생은 야간 일을 해서 아침에 들어오는데, 할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문은 이미 그 전 날 밤부터 잠겨 있었고, 동생이 집에 들어오기 전에 삼촌 방 문을 두들겼을 때, 아무 대답이 없었기 때문에, 삼촌은 전 날 밤에 목숨을 끊은 것이 정황상 맞아떨어졌다. 동생은 혐의가 없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삼촌은 퇴근하시고 돌아와서 밤에 목을 매신 것 같았다. 왜냐하면 화장실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두웠을 때 화장실에 들어가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목숨을 끊으시기 전, 그 주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화장실 문 크기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셨다고 한다. 아마 끈 길이를 가늠해보려고 하셨던 것 같다. . . 정신 없이 장례가 지나가고, 나는 이틀 뒤 바로 호주로 날아갔다. 호주에서 일주일 정도를 보낸 뒤 돌아와 한국에서 또 다시 정신 없이 출국 준비를 하고 미국으로 왔다. 미국에 오자마자 파란만장 적응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경험에 대해서 제대로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바쁜 덕분에 오히려 빨리 잊을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한동안 화장실에만 가면, 화장실 문만 보면 그 일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미국 친구들은 특이하게 화장실 불을 잘 안 끄고 다니는데, 일과를 마치고 어둑해진 방 안에 들어오면 꼭 화장실 불만 켜져 있곤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화장실 문을 열어 아무도 그 안에 죽어 있지 않은 지 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놓곤 했다. . .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다. 화장실 문을 봐도 매번 삼촌이 떠오르는 건 아니다. 아마 앞으로 많이 희석되겠지. 내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지막 6개월을 같이 살았던 가족으로서 책임감이 느껴져 괴로울 때도 있지만, 삼촌이 살아왔던 50년 넘는 인생의 무게가 그 6개월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잘 해드릴 걸, 하는 생각은 든다. 처음에는 삼촌과 잘 지냈다. 나도 살갑게 대했고. 하지만 삼촌이 만취를 해서 할머니를 밀치고 동생에게 칼을 들이대며 죽이겠다고 협박한 이후로, 삼촌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삼촌을 존중하지 않았다. 대놓고 버릇없게 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살갑게 굴지도 않았다. 그러다 이렇게 가버리시니, 내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는 그 생을 끝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마음이 따끔하고 눈이 질끈 감긴다. 도대체 삼촌과 나의 차이는 무엇인가, 많이도 고민했다. 어째서 나는 살아있고, 삼촌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왜 나는 아직까지도 이렇게 많은 기회를 누리고 있는데, 삼촌은 희망을 갖지 못하고 죽었어야만 했을까. 왜 삼촌은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가질 수 없었을까. 어째서 삼촌은 행복할 수가 없었을까.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 걸까. . . 고민해봤자 답은 없겠지만, 어쨌든 삼촌을 생각하면 조금 슬퍼진다. 게다가 너무도 빠르고 쉽게 가족들에게 잊혀진 걸 생각하면, 삼촌의 인생이 측은하다. 이틀 간의 장례 절차를 마친 날, 바로 삼촌의 모든 물건들은 버려졌다.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전재산을 탕진하고 본인의 엄마 집, 방 한 칸에 얹혀 살던 그가 갖고 있었던 것은 몇 여 벌의 옷, 잡동사니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모아온 월급 명세서였다. 성실히도 일했더랬다. 물론 늘 술을 가까이했고, 유흥주점에서 쓴 카드 명세서가 많았지만, 동시에 정성껏 쓴 이력서, 수많은 직장에서 받았던 급여 명세서나 월급봉투들이 빠짐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사람인데, 어째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까. . . 사는 동안 힘든 일이 많기는 하셨다. 삼촌의 어린 시절은 잘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후로, 삼촌은 잦은 가정폭력과 주사로 이혼을 하셔야만 했고 빚이 많으신데, 안정적인 직장이 없으셔서 막노동 판이나 공장 일을 전전하셨다. 버는 돈은 빚 갚는 데 써야만 한다고 늘 술을 드시면 버릇처럼 이야기하셨고 살고 싶지 않다는 말씀도 많이 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 만큼 할머니도 삼촌에게 돈을 많이 주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늘 작게는 몇 백, 크게는 몇 천 만원씩 필요하다고 하면 할머니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 돈을 주시곤 하셨다. 하지만 빚이 얼마나 되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삼촌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 . 사는 게 더 지옥이라면, 그렇게 돌아가셔서 몸과 마음이 더 편해졌다면 삼촌에게 더 잘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5개월 묵은 삼촌의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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