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소통하기   huit.
  hit : 2505 , 2018-11-17 00:37 (토)


다이빙을 할 때나 번지점프를 할 때 무서운 이유는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봐, 
나를 지키려고 공포가 나를 말리기 때문이다.
죽지 말라고.
그러면 나는 이야기한다.
괜찮아, 안 죽어. 

시드니에 있는 동물원에 가서 공중 장애물을 건너는 체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그랬다.
그냥 입으로 
"응, 괜찮아. 안 떨어져."를 연발하면서 갔던 것 같다.
나의 몸이 원하는 것은 나의 안전, 이다.
그러니까 공포는 누구보다도 착한 것이다.
사랑둥이랄까.
나를 지키기 위해 가장 열심이잖은가.

그러니 공포가 다가오면 밀어내거나 부정할 것이 아니라
소통하면 된다.
뛰어내리고자 하는 쪽과 뛰지 않기를 바라는 쪽,
둘은 굳이 싸울 필요가 없고 합의하면 된다.
공포가 원하는 건 안전에 대한 확신이다.
죽지 않는다는 확신.
뛰고 싶은 쪽도 쾌락을 위해 뛰고 싶은 것이지 죽고 싶은 건 아니다.
서로 그 부분에 동의를 하고 나면
손을 잡기 쉬워진다.

공포 쪽이 언제나 좀 더 극성맞은 편인데,
어떻게든 나를 말리려고 논리보다는 감정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우리 엄마라고 생각하고 안심시키곤 한다.
내가 텍사스에 갈 때 총 맞을까 걱정하는 엄마에게 거기도 다 사람사는 곳이라고
안심시켰던 것처럼,
내가 여기서 뛰어내려 익사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공포를
괜찮아, 사람들이 나 뛰어내리는 거 보고 있으니까 건져줄 거야,
라고 안심시키는 것.

두려움을 '느껴야만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걱정되니 하지 말라고 말리는 "누군가", 라고 대상화하면 좀 쉽다.

.
.

필리핀의 한 마을에서 오래 된 흔들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꽤나 낡아보였고 현지인들조차도 건너는 것을 만류했으나
인솔자가 시간 상의 이유로 지름길인 이 다리를 건너기로 결정했다.
바로 밑은 강이었다.
꽤나 위험했고 무서웠으나
동시에 생각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누구 하나라도 익사하기 전에 건져주겠지.
그리고 굳이 내가 건너갈 때 무너질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무너진다 한들 최악의 상황은 물에 빠져 허우적대며 물을 먹는 거겠지.
그러고 한 오 분쯤 있으면 뭍으로 끌어올려져 있을 것이니
인생에 크게 해가 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배낭끈은 풀어놓고
가라앉지 않기 위해, 다리가 끊어지면 배낭은 풀어던지자.

그리고 편한 마음으로 흔들다리를 건넜다.
다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
.

사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실패가 두려운 것은 열등한 마음이 아니다.
약한 것도 아니고, 
무능한 것도 아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나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나무라지 말자.
내가 그렇게 걱정되니-
걱정해줘서 고맙다, 고 인사하고 안심시키면 그만이다.
괜찮아, 안 죽어.

그리고 공포를 꼭 안아주면서 함께 뛰어내리면 된다.
공포는 내가 지켜줘야 하는 가녀린 친구이자,
나를 누구보다도 걱정해주는 사랑둥이니까.



기쁘미  18.11.17 이글의 답글달기

흑 따뜻하고 포근한 솨람 ㅜㅜ

李하나  18.12.04 이글의 답글달기

ㅋㅋㅋㅋㅋㅋㅋ이게 그렇게 되나요ㅋㅋ감사해요 기쁘미님!

기쁘미  18.12.05 이글의 답글달기

에이씨팔안해!인 상황에서도 해보려는 심성이 따뜻한스웨터같이 느껴지네요 ㅋㅋㅋㅋ

맨밥  18.11.17 이글의 답글달기

멋있다... 저도 삶에서 적용해 봐야겠어요.

李하나  18.12.04 이글의 답글달기

넵 우리 한 번 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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