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물정 │ neu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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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녀서 '문화'적으로는 많이 트였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역동이라든지 사회 생활이나 실제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강의실에서나 배웠지 잘 모른다. 나는 내 내면에 큰 관심과 에너지를 쏟아와서 사람들이 일을 어떻게 하는지 돈은 어떻게 벌고 어떻게 모으는 지 뭘로 싸우고 뭘로 밥 벌어먹고 사는 지 그런 건 잘 모른다. 책 좀 읽었다고 인생 달관한 듯 이야기 할 때가 많지만 그리고 물론 실제로 마인드 컨트롤은 잘 하는 편이지만 세상 사는 법은 잘 모른다. 나는 나를 잘 관리할 뿐이지 세상을 잘 사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를 관리하려는 욕망은 사실 내가 엉망으로 망가졌다는 불안감에서 온 강박이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그래서 사실 지금까지는 외적인 조건, 사회적인 지위 획득보다 내면을 정리하는 데에 온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왔다. 그래서 27년을 살고보니 나는 나를 정말 잘 알겠는데 다른 사람과 세상은 잘 모르겠더라. 사회학을 공부했고 해외를 여러 번 갔다왔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현장과 이론은 다르고 외국 '문화'를 많이 아는 것과 세상 물정을 아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며 책에서 지혜는 얻을 수 있으나 그 지혜를 어떻게 쓸 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공부 잘 하는 모범생에 멈춰있었던 것이다. 학생일 때는 모범생으로만 살아도 별 문제는 없었다. 학교가 나에게 요구하는 모습이 그거였으니까. 그런데 졸업해서도 모범생 역할을 하려니 뭔가 맞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내 기준에 너무나 이상하게 살고 있었고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과는 교류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자니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세상 일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다 하고 있었고 그들의 돈과 결정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세상은 그다지 합리적인 곳도 아니고 사람들은 1000명이 있으면 1000가지 유형이 있었고 내가 "나는 당신들과 달라!"라고 외치며 모두를 피하면 결국 내가 돌아올 곳은 내 방 작은 책상 앞 뿐이었다. 밖으로 나아가 그 모든 불합리성과 카오스를 마주하는 것, 그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지난 20여년 역시 고통스러운 삶이었고 요 근래 몇 년간만 행복에 겨워 산 것 뿐이다. 조금 힘들더라도 이제는 세상 공부도 더 하고 싶고 사람들 이야기도 더 듣고 싶고 내 내면에 처박혀 있던 고개를 들어 외부를 바라보고 싶다. 그래도 될 때가 온 것 같다. 그렇다고 내면에 집중한 지난 시간들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바깥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수 년 간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다. 삶의 큰 문제 하나를 해결했고 그로 인해 발생했던 수많은 정신적인 문제들을 모두 치료해냈다. 죄책감도 수치심도 없고 우울도 분노도 없으며 엄마와는 다시 관계가 회복되어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 내 몸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현재에 있을 수 있게 되었으며 다시 사람들을 믿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눈에 보이거나 어디에 내세울 수 있는 성취는 아니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주옥과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들 역시 나에게는 소중하고 큰 자산이다. 그동안 나를 공부하느라 수고했고 앞으로는 세상을 공부하고 세상을 살아봐야지. 부딪히고 깨져보고 타협도 해보고 싸워도 보고. 책과는 다른 세상에 적응도 해보고 노련하게 문제도 해결해보고-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하면서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해도 하고 물어도 보고. 그렇게 살아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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