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인이 되어버린 나 │ 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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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제 시간이 2002년1월1월 1시경이다. 29년 살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이루려고 하지도 않았던 내 인생을 이야기해볼려고한다. 나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최종학력은 고등학교2학년 개학초에 퇴학당했다. 직업이라곤 남들에게 말할만한 일을 해본적이 없었다.가족관계는 홀어머니 한분이다.독자다... 이런 글을 써본적도 없고 문장도 두서가 없을것이고 글도 많이 틀릴것이나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나의 어릴적 기억들을 생각해보면 부유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자식하나 열심히 키워볼려는 그런 집에서 자랐다. 내 아버지는(돌아가실때까지 아빠라고 말을 놓았다 친구처럼) 참으로 거친 사람이었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셨다.건축기사였다.70년대 건축기사였으면 그런데로 돈을 많이 모을수 있었 다고한다. 주색을 좋아하셔서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내 어머니는 내가 16~18살때까진 천사였다.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다. 난 부유하지는 않으나 아들하나라고 애지중지 키워 그당시 가기 힘드었다는 유치원도 다녔다 좋은 유치원에 갈려면 추첨을 해야할 정도였다니 한동내에서 겨우 2~3명 정도 다닐 정도였으니 내가 유치원 다닐때 우리집은 동내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그 전에 일은 잘 생각이 나질않는다. 아버지가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항상 퇴근하고 돌아오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자다가 시끄러워서 깨서보면 엄마를 때리고 있고 난 그런 아버지를 울면서 말리고 가게는 난장판이 되어있었다.항상 그 다음날이면 엄마는 아무말없이 그것들을 다시 진열하곤 했다. 엄마를 때리는 버릇은 내가 머리가 굵을때까진 계속 되었다.일주일에 3~4번 꼴은... 그러면서 난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어서 살던 동네를 이사를가고 우리큰집이 있는 동내로 이사를가게 되었다 그동네에서 내가 태어났다고한다. 아버지와 건축일을 관두고 엄마와같이 통닭집을했다 두분은 정말 자주 싸웠다. 정말 징그럽게 싸웠다 두분이 싸우게되면 일방적으로 엄마가 맞으니깐 나와 엄마는 항상같이 도망을갔다 아버지가 잘때까 지 추운겨울 도망을가게되면 둘다 맨발로 나와서 갈곳도 없고해서 남의집 보일러실에 들어가서 울곤 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초등학교땐 공부도 잘하고 학교대표 육상선수였다. 작은 학교였지만 싸움도 좀 잘했던 편이였나보다 학교에서 짱였으니깐... 어느날 아버지는 또 엄마랑 싸웠다 또 엄마와 나는 옆집 옥상에 숨어서 울고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말하는 것이였다. 내가 너희집에와서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대우를 받느냐고 그러면서 날보고 너희 친엄마를 찾아서 같이 살라는 것이였다. 멍했다 엄마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친엄마??? 난 유치원다니기 전에 기억이 잘 안나는데 한가지 생각나는건 아버지랑 라면을 끊여서같이 먹던 기억이랑 엄마가 나에게 100원 준 기억인데 그때 아빠가 고맙습니다라고 해야지 하는 기억이 나는데 난 엄마가 "니 친엄마를 찾아가"란 소리를 하기 전까진 왜 엄마가 돈을 주는데 아빠가 고맙습니다라고 하라고했는게 가끔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는 계속말했다 니 친엄마는 술집여자고 형제들도 있다고했다.내가 유치원을 다닐때 엄마가 말했 다 모르는 여자가 따라가자고하면 절대 가지말라고 유괴범이라고 유치원에서 낮선 사람들 따라 가지 말라는 교육을 매일 받았으니깐 그러던 어느날 어떤 여자가 남자랑와서 니가 범이냐?맛있는것 사줄 께 잠시 아줌마 따라가자고하던데 난 엄마가 말하던 유괴범이구나 생각하고 유치원안에으로 도망가서 내 사물함속에 숨었다.집에와서 유치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그 후 난 유치원을 옴기고 이름도 바꿨다. 그래도 어린 나이라서 쉽게 이런 일들을 잊었다.그리고 중학교를 체육특기자로 스카웃되어 진학했다 그런데 진학하고 엄마가 운동을 그만 두라고했다 공부를 하라고했다 그때까진 공부도 상위권에서 했다.그렇게 아무탈없이 2학년이되었다.(아버지와 엄마의 싸움은 계속되고) 2년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자주 그 친구들 동네로 놀러가게되었고 그 친구들 선배라는 사람들도 알게되었다 그때 당시는 불량배였다 머리도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그러면서 담배도 배우고 술도 배우고 술을 처음 배우던때라 주사들이 심했다.자기 가정환경을 이야기 하면서 많이들 울었다. 아버지가 없는 친구 아버지가 있는데 얼굴을 본적이 없다는 친구 엄마가 없다는 친구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도 수긍하기는 싫지만 지금 내엄마가 친엄마가 아니였다. 나도 술이 취해서 그 당시 제일 친했던 친구에게 말을했던것같다 그 당시가 사춘기였지싶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때쯤 콜라텍이 있었다.토요일이면 엄마한테는 독서실가서 공부한다고하고 독서실에 책가방을 던져놓고 콜라텍을 가곤했다.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그래도 돈이 제일 많은 편이 였다. 1500원이 없어서 콜라텍을 못가는 친구들도 있을정도였으니깐 심지어는 집에 있는 쌀을 팔아서 가곤 했다. 그당시 비닐봉지 한봉지팔면 3000원 정도 준것 같다.그렇게 내 사촌기는 흘러가고 있었다. 3학년이되어서도 사춘기는 계속되었나보다 선배들도 많이 알고 차쯤 삐뚤어져만 갔다. 집에서 주는 용돈으론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학교에가서 애들 돈을 뺏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아버지가 학교에와서 내가 뺏은 돈을 다 물어주기도 했다.누군가 선생에게 말했나보다. 난 내가 아주 불행한 놈이라 생각하고 막살기로 했다. 친구들과 집을 나왔다 친구 하나가 말했다 자기가 잘 아는 선배가 깡패를 한다고 우리 깡패를 해보자고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그 당시 문신을 했다. 처음에는 허벅지에 어깨에 그리고 집에 붙잡혀와서도 가출은 계속 되었다. 집에 돈될만한것은 다 팔아먹고 돈만 보이면 가지고 나갔으니 집을 나가면서 문신도 하나씩 늘어났다. 팔에 그리고 등에도 가슴에도 그렇게 시간이 지나 중학 졸업할때가 되었는데 수업일수가 안되서 졸업이 어렵다고 학생과장이 말했다. 엄마가 돈을 좀 써서 중학은 졸c했다.고등학교도 공고를 가게 되었는데 3일 다니고 그만뒀다. 그리고 건달 생각을 시작했다 말이 건달이지 17살짜리가 대가리 피도 안마른것이 무슨 건달이라고 그냥 선배들 따라다니면서 심부름이나 하고 그렇게 생활을했다.18살이 되었는데 집에서 돈을 써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일주일에 2~3번가면 많이 가는 거였다 어렵게 어렵게 1년을 다니고 2학년이 되었는데 스쿨버스에서 3년선배랑 싸움이 있었다 그당시 선생은 이유불문하고 후배가 선배랑 싸웠다는걸로 나만 때리는 것이였다 그 당시 그런 처사가 무척 억울했나보다 스쿨버스에서 내려서 주위에 집히는건 다 스쿨버스에 던졌 다. 내가 내리는곳이 신호등이 있는곳이고 마침 신호를 받고 있는 상태라서 차는 가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학교에서는 유명했다 문신있는 놈으로 교등학생이 온 몸에 문신을 한놈은 나밖에 없었으니 옆에 빈병 박스가 있어서 병을 차에 계속 던지고 있었는데 그때 엄마가 건널목을 건너오면 서 울고 있었다. 그만하라고 말렸다 그리고 중국집으로 데리고 갔다 짜장면을 하나 사주면서 학교 다니기 싫으면 다니지 말하고 했다. 엄마는 시장을 가는 길이였나보다 엄마는 시장으로가고 난 다시 집을 나왔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친구가 중학교때 1년선배가 우릴 찾는다길래 선배를 찾아 갔다. 선배는 건달을 하라는 그것였다.친구와 난 막내로 건달생활을했고 소위 전쟁이라고 하는것도 했다. 19살때 징역을 가게 되었다.난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엄마랑 둘이 첫 면회를 왔는데 엄마는 펑펑울기 시작했고 아버지도 옆에서 벽을보고 우는 것이였다. 난 정말 안울려고 참아보았다.코끝이 정말 아팠다. 그 당시 우리집은 식당을 했는데 엄마가 돈을 엄청 많이 모왔다. 징역은 나오고 다시 동네로 들어가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선배들과 않좋은일이 있어 그동네를 떠나게되었고 집에 돌아갔다. 오랜만에 들어와보니 엄마도 아버지한테 맞고 아무소리 못하고 울던 그런 엄마가 아니고 할소리 다하고 그런 억척스런 엄마가 되어있었다. 세월이 엄마를 많이 변하게했 다.그 당신 20살이였는데 한 여자를 알았고 그땐 정말 그여자가좋아서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업소에 다니는 아가씨였는데 2년정도 동거를했다.그리고 그당시 삐삐가 있었는데 기계는 없고 가끔 음성만 들어보고 했다. 그런데 엄마가 음성을 남겼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했다. 난 엄마가 날 집에 들어오라고 거짓말을 하는줄 알았다.엄마랑 통화를 했다.2년만에 통화였다 내가 음성에 무슨 남긴 말이 무슨 말이냐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다니 거짓말 하지 말라고했다. 엄마는 사실이니 집에 잠시 들어와보라고했다.집에갔다 아버지가 없었다 정말 돌아가셨다. 그런데 슬프기는한데 왜 눈물이 안나는건지? 멍했다 여러생각이 났다 그리고 몇일 지나서야 실감이 나고 울기도했다.최고의 불효가 자식이 아버지 임종을 못 지키는 것이라고하는데 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것도 여자에 미쳐서 몰랐고 염을 하는것도 보지도 못했다. 큰집 형들이 나 대신 다 했다 고한다. 아버지 묻으면서 큰집 형들이랑 외가 사람들이랑 트러블이 있었나보다 외가쪽 사람들은 정말 양반들이다 남한테 해끼칠 일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생각같아서는 큰집형들은 다 죽이고 싶었지만 내가 잘한게 없으니 아직 아무소리 못하고 그냥 안보고 지낸다.한마디로 사촌들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때 난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고했다 난 엄마 식당일을 도우면서 나가서 고생하면서 빠진살도 다시 찌우고 엄마는 그런 내가 기특했는지 차를 한대 사줬다.22살에 중형차 그것도 새차 그당시 최고 모델의 중형세단을 사줬다. 내 주위에 새로 사귄 친구들이 대부분 신도시로 개발하면서 졸부가된 집 아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집도 돈이 편에 속했다...그리고 엄마는 내가 남들한테 기죽지 말라고 그런 차를 사준것 같다. 엄마는 남자가 사회생활하면서 지갑에 돈이 없으면 안된다면서 하루 용돈을 5만원씩은 꼬박 꼬박줬다. 난 엄마 가게에서도 삥당을 하루 5만원 정도는 정도는 치고 했으니깐 정말 부족할것 없이 풍요롭게 생활했다. 난 사치도 심해서 그당시 브랜드병에 걸렸었다. 수입품 옷이 아니면 입지도 않았고 양말하나에 3만원짜리를 신었어니깐 그리고 하루를 멀다하고 여자들 작업하로 하고 그리고 난 엄마한테 말해서 커피숍을 하나 차려 달라고해서 커피숍을했다. 흥청망청 쓰다보니깐 한 일년 장사하다가 망하고 엄마는 이모에게 정말 큰돈을 빌려줬다.4억이라는 돈을 빌려줬으니... 그렇게 내가 25살이 되어서 엄마는 가게 장사가 안되서 팔게되었고 이모가 다른 가게를 같이 해보자면서 엄마한테 동업을 제의했고 엄마는 선듯 가게판돈을 이모에게 줬고 그 이후로 이모는 모습도 보이지가 않고 엄마는 형제간에게 사기를 당한것이다. 나도 차를 팔게 되었고 남은 것이라곤 살고 있는 빌라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 어느날 친구랑 술을 먹다가 친구랑 싸우게 되었는데 술이 넘 과했나보다 머리에 4군데가 빵구가나고 병을 던진게 얼굴에 맞아서 심하게 째지고 허벅지랑 팔도 찔려서 정말 죽이기 직전까지 싸웠나보다. 어릴때부터보던 친구라 그친구집에서 신고는 안했지만 성형이랑 치료를 해달라고했다. 엄마는 집은 전세를 놓고 그돈으로 그 친구 치료비로 줬다. 그리고 26때부 난 피시방에서 살았다 온라인 게임을하면서 그렇게 1년 정도를 피시방에서 게임만 하고 허송세월을 보냈다. 지금 내 나이 29살이다 지금 엄마는 나랑 다른 지방에서 남의집 식당에서 주방장을 하고 있다. 난 120만원짜리 삭월세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집도 벌써 1년정도 살았다 하지만 난 이때까지 일을 해본적이 없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하기에 노가다를 해보기로했다. 한 3일하고 한달 앓아 누웠다. 어릴때 싸우다가 쇠파이프로 허리를 맞은적이 있는데 무거운것을 들면 허리가 끊어져 나가는것 같았다. 숨을 쉬기도 힘들 정도로 그리고 올바른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다 배운것도 없고 온 몸에 문신이 있다보니 똑바로 사람들이 봐주질 않는다. 여름에 반팔은 생각도 못한다. 어른들 말이 틀린게 없다 지금 똑바로 하지 않으면 커서 후회한다고 그 당시는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면서 그렇게 생각하고 흘린 말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뼈져리게 후회가되는지 어른들 말중에 돈이 있어야 친구도 있고 내가 잘되야 친구도 따르는 법이라는 말 틀린게 없다. 난 지금 2년동안 그의 집안에서 생활했다. 처음에는 엄마한테 용돈을 받았지만 이제는 차마 받지를 못하겠다. 너무 너무 미안해서 2년동안 친구도 안보고 지낸다 지금의 내모습이 너무도 부끄럽고 차마 남 앞에 나서질 못하겠다.일단은 또 1년치 삭월세 값120만원은 해결했다. 집안에 가전재품을 다 처분하고 지금 집에 남아있는건 컴퓨터 한대 14인치 TV한대 전용선값은 지금 연체가되어 신용불량자로 처리한다고 연락이오고 전기세도 2달이나 밀렸다. 그리고 지금 2달동안 밥을 먹어본 20일정도 되나 모르겠다. 그의 라면만 먹고 살았다. 일주일씩 아무것도 안먹고 물만 먹어본적도 있 다. 다이어트가 아니라 먹을게 없어서 컴퓨터를 팔아서 돈을 마련하면은 되는데 컴퓨를 팔면 너무 외로워진다. 2년동안 말을 몇마디나 했을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상대가 없다 말을 잊어 버릴까봐 미친놈 처럼 TV를 보면서 이야기를 한다.정말 외롭다 너무 너무 외롭다 엄마가 정말 보고싶고 목소리도 듣고 싶은데 엄마 목소리를 들어면 가슴이 더 아파질것 같다. 우리집에와서 고생만하고 자식이라고 하나 있는게 인간 구실도 못하고 정말 미안하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분이 있으면 절대 저 처럼 살지 마세요. 사람이 정말 그리워서 이렇게 적어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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