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글. │ 미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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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글로 쓰는 글외 컴퓨터로 쓰는 글은 처음이라 표현이 제대로 될까 걱정된다. 항상 지나가는 생각들, 사실 아까울 필요는 없는데, 어쩌면 나는 항상 같은 생각을 맴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 한 고민을 오늘 아니면 일주일후에 또하고, 어쩌면, 98%이상이 필요없는 걱정일지도 모르나, 항상 하고 살고 있다. 그고민을 글로 표현하면 정확하게 표현될 자신은 없다. 어쩌면, 본래 생각하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형태로 표현될지도 모른다. 어쩌면이 아니라,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표현하려고, 노력해보겠다. 그리고, 낭떠러지를 향해가는 눈먼 봉사에 의해 이끌려 가고 있는 군중들에게 소리치는 또한명의 봉사가 되보겠다. 만명중에서 단 한명이 관심을 가지면, ( 사실 관심 갖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그 한명에게 또다른 낭떠러지가 옳은 길이라고 우기면서 만족해 보겠다. 표현된 나의 글을 하루가 지나서 읽어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의 글처럼 유치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둘중에 하나다. 첫째는 글로 정확한 내가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글을 쓰고 있는 중간에는 마치 나무를 숲으로 착각 을 하다가 하루가 지나, 평상심을 찾으면 나무를 숲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어제의 나는 이미 지금의 진정한 내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항상 범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는 앞의 첫째내용 자체가 의미가 없는 내용인데, 언어는 마음의 흐름을 표현 하려는 약속된 기호이긴 하지만, 유한한 표현 형태인 언어가, 과연 연속적이고, 다중적인 변화마음의 표현을 해낼 수 있을까? 물론 글쓰는 이의 언어사용에 있어서 사용하는 기호로써의 글이 받아 들이는 이의 기호로써의 글과 완벽한 약속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 된다고 보지만, 사실은 주관적인 마음을 객관적인 글로 표현 한후에 다시 주관적인 마음으로 글을 보니,글 쓴이의 주관은 그 객관적인 표현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완벽한 언어는 이심전심의 마음일거라고 주장하는 스님이 계신다. 그러나, 부처님의 마음이 또다른 부처(객체로서의 부처)인 인간이 이심전심으로 통하면 그순간, 그 인간은 해탈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인간은 여전히 윤회의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진정한 이심전심이 되지 못한다는 나의 주장이다. 첫 글에서 언어로서의 글의 허구인 나의 글을 비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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