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지도 않았는데 녹아버리는 눈...   Waiting for her...
 춥다가 따뜻해진 하루... hit : 1656 , 2003-12-19 22:04 (금)


새벽에 걸려 온 그 아이로부터의 전화 한 통...

새벽 네시 삼십팔분...

그리고 내가 일어난 시각 네시 사십분...



'부재중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사람 목소리를 넣은 기계음에 난 벌떡 일어나버렸다...

꽤 늦은 시각.....

또다시 나의 머리는 기계처럼 그 아이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까지 친구들과 술을 마신걸까....'

'술마시고 잠이 안 와서 전화한걸까.....'

'혹시 무작정 우리 동네로 택시타고 온 게 아닐까.....'



나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한 번 깬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린 것 같았다....

얼마의 시간동안 생각을 한 것일까....

그 시간동안 나의 머리는, 나의 가슴은 그 아이에게로 향했다....


'전화를 해야 되는걸까.......그래야 되겠지....'

'아니.....기다려야지.....며칠이나 됐다고.....아무 일 없겠지...'


새벽 어스름이 옅어져갈 때 쯤 다시금 내 눈은 감겨진 것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그 아이의 전화없이도 잘 출근하고 나서의 안도감....

늘 그랬 듯 서랍을 열고 다이어리를 꺼내고....

오늘의 할 일을 적었다....

그러다 가슴에 걸려있는 휴대전화의 감촉을 느끼며 다시금 걸려왔던 전화 목록을 살피는 나....

그리고 또다시  새벽의 갈등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결국....힘겹게 그 아이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내 손길은 그 아이가 전화를 받지 않을수록 빨라지고...

그만큼 그 아이에 대한 커져가는 걱정도 우려도 빨라졌다....




그리고....

점심 무렵이 되서야 결국 그 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며칠 만에 듣는 그 아이의 목소리....

너무 맥빠지게도 난 그 아이의 목소리조차 잊을만큼 잔인했던 것일까....

아무 일 없었다는 반가운 그 목소리에 웃음이 깃들여있다...

스스로 내 가슴에서도 다행이라는 말을 한다....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아무 사고도 없었다는 말을 듣고나서.....할 말이 없어진다....

이제 연락 안 한다던 내가 해야할 말은.....

눈 앞이 깜깜해져왔다....

과연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게 맞긴 하나....

스스로 마음 속으론 지금까지 사겨왔던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싶고..더 좋아한다고...

내가 물으면 그렇게 대답을 하겠지만.....왠지.....며칠만에.....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연락해라......"



그 아이가 내게 말했다.....

난 대답했다......

'그래.....미치도록 연락하고 싶다.....미치도록 만나고도 싶고....'


하지만.....

난 바보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젠 내 결심이 그렇게 허무하게 끝낼 결심이 아니란 걸 말해주고 싶어서....

비록 얼마 안 갈 것을 알지만....

이대로 계속 가는 것도....

그 전처럼 머리 아픈 것과 마찬가지로 날 미치게 하는 짓이라고.....





저녁 무렵 친구들이 내 근무지로 찾아왔다....

그리고 같이 간 극장....

우리가 본 영화의 여주인공이 그녀의 이름과 같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가 흘러갈수록 더욱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짝사랑....



'그래....나도 짝사랑을 했었지.....'


영화 속 남자주인공에 내 모습이 겹쳐보이고....

다른 남자에 그 아이의 그 사람이 겹쳐보인다......




영화는 제목에 걸맞게 해피엔딩이었다....

그렇지만 왠지모를 씁쓸함은 생각하기도 싫은 무언가로 내게 남아온다.....

'전화를 하고 싶다.....'

'목소릴 듣고 좋아하고 싶고...다시 연락하고...전처럼 기다릴거란.....그 말이 하고 싶다....'



영화 속에서 펑펑 내렸던 눈.....

그러나 지금 여기엔 내리지도 않은 눈이....이미 내 곁에서 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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