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랑이   미정
  hit : 170 , 2001-04-29 11:34 (일)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려서 화초들에게 물을 줬다.
내 사랑초한테도.
예전엔 날씨가 맑은 날 물을 잘 줬었는데 날씨가 흐린 날 주는 게 더 좋다는 걸 알았다.
아마 집안의 화초들도 날씨가 흐리면 담박에 알고 본능적으로 비를 기다리지 않을까 싶다.

대개가 부모님들이 키우시는 화초들이고, 내 애완식물은 사랑초 하나다.
우리 사랑이는 내가 좋아하는 분홍색, 보라색깔이다.
잎은 짙은 보라색, 꽃은 옅은 분홍색
낮엔 잎은 활짝펴고, 해가 지면 일제히 잎은 반으로 접는데, 활짝펴면 그 모양이 특이하게도 하트모양이라 이름이 사랑초란다.
꽃은 은방울꽃처럼 종모양인데, 아주 작고 항상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겨울 외에는 항상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꽃들을 볼 수 있다.

우리 사랑이는 이름처럼 정말 사랑스럽다.
잎이 짙은 보라색이고 꽃도 작아서, 초록색 식물들보다 좀 어두워보이고 섬세하고 연약해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이고, 항상 모양이 변해서 볼 때마다 마음이 새롭다.
이젠 내가 사랑이에게 다가가면 알아보고 날 반기는 눈치다  ^^ ;;

오늘은 사랑이한테 물을 주면서 괜시리 걱정이 됐다.
남자친구가 군복무할 때, 그것도 과연 언제나 제대하려나 까마득할 때 면회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청주에서 사가지고 왔으니까 그 애가 제대해서 한참 술먹고 놀러다니는 지금은 사랑이랑 나랑 만난 지도 꽤 됐다.
우리 사랑이는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아마 한두달도 견디지 못할텐데 내가 언제까지나 돌봐줄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아마 부모님들이 자식 걱정하는 맘이 이럴까..
그래도 얼마전 남친이랑 서울대공원 놀러갔다가 들른 식물원에서 키우는 사랑초가 우리 사랑이보다 훨씬 못해서 으쓱했었다.

몇년전에 TV프로그램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한 모자 얘기를 봤다.
아직도 장가를 안간 40대 아들을 데리고 사는 한 할머니는 정원에 온갖 화초를 키우는 낙으로 사셨단다.
그중 사랑초를 가장 애지중지 키우셨구.
근데 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시자 그 정원에 있는 화초들이 신기하게도 모두 져버렸단다.
앞집 옆집 뒷집 정원 모두 여름 한창때라 특별히 관리를 하지않아도 꽃들이 만발하고, 나무들은 울창해 그 할머니집 담장안까지 잎을 뻗치고 있는데, 유독 그 집만 모든 화초가 시체처럼 변해버린 장면을 보고 너무 신기했었다.
그래서 그 아들은 생전에 애지중지 정원을 돌보시던 어머니 생각에 매일 열심히 물주고 가꾸는데도, 화초들은 다시 살아날 기미조차 안보인다며 울었다.
이웃 주민들이 그 할머니에게 분양받은 사랑초를 가지고 왔는데 모두 예쁘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 때 사랑초라는 걸 난 처음봤다.
저렇게 생긴 꽃도 있구나. 이름도 너무 예쁘네. 정말 저 꽃들이 주인의 죽음을 느끼고 있는걸까..하는 생각들을 하다가 남자친구 면회갔다오면서 거리에서 파는 우리 사랑이를 보고 사가지고 왔었다.
우리 사랑이는 오래오래 예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  우리 사랑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