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의 눈물   2012
  hit : 2909 , 2012-02-05 23:40 (일)
결과는 이랬다.
저녁에 오빠가 눈물을 보인 것이다.

원인은 나..-_-;;
최근 1년간 실업 상태의 오빠가 요즘따라 게임에 집중하길래 그 상황을 '사업하는 중'이라고 놀렸는데
오늘은 폭발해서 부모님 앞에서 내게 "XX" 욕을 한 것이다.
나는 부모님 계신 데서 오빠가 그 말을 한 것이 기가 차고 황당했다.
부모님도 당황하셨다.
나도 당황했다.
오빠는 계속 화가 나 있었다.

아빠는 우선 상황정리를 하셨다.
부모님 계신데 그건 아니다 하셨고 나는 그럴 수도 있지만 잘못했다고 하셨다.
오빠에게는 너 자신 때문이지만 그러면 안된다고 하시며 부모님을 무시한 처사라고 하셨다.
오빠는 내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내가 한 말이 자꾸 거슬렸다고 했다.

작년 새해쯤, 부모님께서 이제 좀 일을 쉬시려는데 갑자기 오빠가 실직했다.
그땐 나도 대학원에 합격해서 대구로 내려올 마음을 먹고 있었다.
부모님은 급 당황하셔서 나의 사직을 말리셨지만 나도 큰 맘 먹었던 결정이라 번복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오빠로 인해 힘들었다.
부모님은 자식이 뭐하냐고 묻는 말에 흔들려하셨고 나는 대구로 와서 친한 친구들이 묻는 안부에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들이 말하는 소위 결혼의 조건 중, 형제자매 사정 무시못한다는 말에 입가엔 미소를 띄며 아래로 눈을 떨궜었다.

안다. 오빠 자신이 가장 힘들다는 것.
하지만 피를 나눈 남매라도 오빠가 얼마나 힘든지. 나는 모른다. 부모님과 내가 받는 스트레스를 그가 지금은 달리 살필 겨를이 없다는 것. 알지만 좀 힘든 것 같다.

오빠에게 내가 한 말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님께서 좋은 인맥이나 경제적인 능력이 있으셔서 오빠의 사정을 해결해주지 않는 이상.
자신이 헤쳐나가야 할 길이다.
있는 집 아이들은 그들 사정으로 살아가지만 우리같은 일반 시민들은,
대한민국 누구나 그래왔듯이 자신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오빠도 그걸 알텐데. 솔직히 나가면 당구. 집에선 게임. 무협만화, 무협소설.
부모님 계시면 공부하는 눈치라도 좀 보일 것이지, 저렇게 눈치없고 우둔한 아이였나 싶기도 하고
여러 모로 오빠의 머리 속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하고 싶은게 없다고 하는 오빠 말에, 하고 싶은 일 찾아서 직업 검색이라도 해보던가
남들 다 하는 곰무원 곰부라도 시도해보던가 아님 친척들이 권유하는 음식점이라도 해보든가.
뭔가 한 발짝 계단을 내딛어야 할텐데..
힘들고 어려운 때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있었다.

나는 내가 달팽이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자신감, 사회성, 실행력 다 떨어져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틀어박혀 있을 때도 있었다.
내가 아는 건 어둠이 깊어져야 새벽이 온다는 것 뿐이다.
누가 어둠을 걷어주는 것도 아니다. 새벽을 빨리 보기 위해서는 힘들어도 앞을 보고 걸음을 내딛어 빨리 산 정상에 다다라야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많은 시간이 흐른 뒤 후회만 남길 뿐이다.
오빠가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이 단순한 일에 대해 그가 언젠가 언급할 날이 오겠지.
그 날까지 오빠가 아무리 많은 눈물을 흘려도 괜찮아. 누구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웃고 사는 건 정말 싫다.

나는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정확히 인지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릴거야
지금 당장은 남에게 부끄러워도 오빠 자신에게는 떳떳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언젠가 남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오빠가 되어줘
적당히 울고 힘을 내. 오빠는 싫어해도 나는 옆에서 계속 지켜볼테니..



내 마음도 아프지만 내 놀림이 언젠가 오빠에게 약이 되었다고 나에게 말해줄 시간이 꼬옥 왔으면 좋겠다.



cjswogudwn  12.02.06 이글의 답글달기

약이 될 수 있는 말인 거 백번 인정하지만
놀리는 투였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놀리는 말을 누가 맘속 깊이 새겨 듣습니까.
제가 백수라 그런가? 전 진짜 상처받았을 거 같은데...
저도 제가 할 일 안하고 지금도 새벽 1시까지 웹사이트에서 부유하고 있거든요
뭐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라서..그럴 땐 진짜 암것도 안하고 다른 데 정신을 쏟아붇게 되는 거 같아요....ㅠ....
저도 되게 부끄러운 가족의 일원..ㅠ.ㅠ.......이휴.......서로 서로 잘됐으면 좋겠네요

볼빨간  12.02.07 이글의 답글달기

제 글을 다시 읽고 달린 댓글을 읽은 뒤 저는 제 글이 제 글이 아니라 남의 글처럼 여겨졌습니다. 전 참 못된 아이같네요.
무엇을 할지 몰라 다른 것에 집중하는 오빠를 지켜보기가 힘든데 실직도..지금의 상황도 오빠가 원했던 게 아닌 걸 우리 가족이 제일 잘 아니까..내일 오빠에게 사과해야겠어요.
오빠의 행복을 바라는 건 무엇보다 가족이니까..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면 참 행복한 것이고 실제로는 그런 사람이 많지 않은데..이런 시간이 주어진 것 또한 오빠를 위한 삶의 두번째 기회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떠나서 하고 싶은 무언가를 알아보고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거나 하는 모습을 부모님께도 좀 보여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몽상가님. 짧고 굵게 퐈이팅!!

바나나우유처럼달콤한  12.02.06 이글의 답글달기

저도 여동생이 있는 오빠로써 생각을 하게되네요 ㅎ
물론 글쓴이분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의 여동생은 정말 여동생이라 ㅎ
글쓰신분처럼 제가 조언보다는 용돈달라는 투정과 연애고민만하거든요 ㅎ
이제 고3이라 진로고민도많고한데 오빠랑은 대화도 안하구...
나이차이가 많이 나긴하는데... 제 여동생은 언제 철이 들까싶어요 ㅠ
부럽네요 ㅎ 좋은 말씀하신거예요
지금 말씀안하셔도 알고있을테고 나중에 오빠되시는분도 표현할꺼예요
고맙다고... 그런데 남자가 표현이 서툴은건 아시죠?ㅎ
그것까지 이해해주세요 :)

볼빨간  12.02.07 이글의 답글달기

여동생분께서 나중에 나이가 좀 들면 슬며시 여동생의 소녀쩍이 또 그리워지실 거예요. ㅎㅎ
그라시안님 댓글보고 생각하니 울 오빠는 은근히 마음이 여린 거 같네요. 알겠습니다. ㅋ
아..나도 울 오빠랑 안 싸우고 술도 같이 한 잔 하고 좀 대화를 해봤으면 좋겠다아 ㅜㅜ

밤비  12.02.07 이글의 답글달기

볼빨간님의 오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지금 이런 오빠의 모습을 바꿀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겠지만 1년이나 이런 모습으로 지냈다면 자극이 필요할 것 같아요.
무기력이 쌓일수록 벗어나기는 더 힘들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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