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이중구조에 대하여 2   공개
  hit : 3860 , 2012-03-11 06:10 (일)



<Desperate Housewives>에 나오는 르넷에게는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인 두 쌍둥이 아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일때 학교에서도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등 문제가 많아 그 아이들을 감당할 선생이 더이상 없어지자 담임이 그녀에게 최후통첩을 해요. 아이들에게 ADHD 약을 먹이든지 아니면 전학을 시키라고.

그 학교는 그녀가 너무 좋아하는 그 동네를 떠나지 않고도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유일한 공립학교였어요. 이사를 가지 않으려면 자신의 형편으로는 보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전형도 몹시 까다로운 사립학교로의 전학을 시도해야하는 상황이었구요.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친구의 방문을 받고, 두 사람이 함께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셔요. 르넷이 처한 곤란한 상황을 접하고,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그 친구도 약 복용을 넌지시 권하죠. 그때 르넷은 서툰 솜씨로 엉성하게 빚어 거칠게 초록색 칠을 한 삐뚤어지고 투박한 머그잔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나마 바닥으로 커피가 조금씩 새고 있었어요.

르넷이 친구에게 대답하기를, 자신은 그 잔이 너무 좋대요. 아이들이 만들어 선물해준 잔이었거든요. 부엌 냉장고 위에도 벽 위에도 아이들이 그리고 색칠한 그림들이 빼곡히 넘쳐나고, 조잡하게 만든 공작물과 종이로 오리고 붙이고 접어 만든 꽃선물 등을 환한 웃음과 함께 자랑스럽게 엄마에게 내미는 아이들의 플레시 백 장면들이 지나가죠.

약(항우울제의 반대 효과를 내는 일종의 우울제)을 먹이면 아이들의 과잉행동을 잠재워 차분한 아이들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와 동시에 아이들이 원래 갖고 있는 좋은 부분들까지도 모두 함께 제거되는 게 너무 싫고 두렵다는 얘기를 해요. 야성과 상상력으로 약동하는 아이들의 작품과 애정이 듬뿍 담긴 사랑스러운 선물들, 천진무구한 웃음과 생기발랄함, 엄마인 자신까지 동화시키고 물들이던 환하게 빛나는 순간들... 이 모든 것들도 함께 사라지는 게 슬프고 두려울 밖에요.

그 아이들에게 내려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는 진단은 사회의 편의대로 그 아이들을 분류하고 다루기 위해 붙여진 꼬리표에 불과하죠. 현실적인 제약들에 의해 그들이 장애아로 분류되는 것이지, 써머힐 같은 자유로운 학교에서라면, 그들은 개성 강하고 활달한 아이들일 뿐이죠.

사회에서 통용되는 허용 범위를 벗어나는 개인은 그 사회로부터 이와 비슷한 선택을 강요받게 되고, 그래서 고단하게 부딪치느니 평균치의 안전한 삶을 살도록 길들여지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타인의 기준에 자신을 맞출 수 없는 개인들은 반사회성과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각기 자신의 방식으로 그것을 뛰어넘는 자유에의 길을 부단히 추구하겠지요.

디오니소스적 자아는 르넷의 두 쌍둥이 아들과 비슷할 거예요. 통제하기 어려운 악동의 모습과 사랑스럽고 천진한 천사의 모습 둘 다를 가지고 있는. 실제로 악마성과 천진성이 혼재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죠.

엄마인 르넷을 아폴론적 자아로 비유해 볼까요. 르넷이 어떤 부모인가에 따라 아이들의 안녕과 미래, 르넷과 아이들의 관계가 달라질 거예요. 위험성과 악마성을 제거하기위해 생명력과 천진성 까지 말살하며 아이들을 강제하고 억압할 것인가, 위험과 어려움을 내포하더라도 아이들의 좋은 면을 지켜주기 위해 때로 달래고 때로 으르며 화해와 조화의 길을 모색할 것인가.

후자의 선택에는 상당한 용기와 지성, 스스로에 대한 인내와 관용이 요구되겠지요. 하지만 두 자아가 때로 갈등하면서도 서로를 인정하고 소중하게 돌보는 관계가 분명 건강하고 조화로운 자아의 상태 같아요.

하나양이 겪은 불행이 남다른 경험이자 상처겠지만, 그 불행에 너무 압도되어 짓눌리지는 않기를 바라요. 과거의 불행만으로도 억울한데, 그 불행에 현재와 미래까지 발목 잡히는 건 더 억울하잖아요. 그 경험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자신에게 가혹하거나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자의식과잉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억울한 일이죠. 또는 이와는 반대로 타인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관대하거나 지나친 희생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지는 않는지.

본디 선하고 여린 성품의 하나양 같은 사람은 자신의 디오니소스적 자아를 좀 풀어놓아도 별 문제가 없을 거예요. 오히려 상상력과 창의력, 풍부한 감성과 예술성이 자연스럽게 흘러 넘치지 않을까요. 그런 좋은 싹들을 지금이라도 잘 북돋아 기를 펴게 해주세요. 

“예술은 치유되지 않는 상처에서 비롯된다”는 바타이유의 말이 있지요. 외상이 치유되기 까지는 자신의 상처를 펼쳐 보이고 그려내는 과정이 필요할 거예요. 그림이나 글을 통해 또 상담치료를 통해 이러한 과정을 충분히 거치면서 서서히 그 경험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요.

李하나  12.03.11 이글의 답글달기

제가 디오니소스적 자아를 풀어놓지 못하는 본질을 딱 짚어서 말씀해주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오니소스적 자아를 인정해보아라-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읽고 읽으면서 생각해볼게요:-) 지금으로서는 역시 아폴론적 자아가 눈을 뜨고 '흠, 그럼 뭐부터 시작할까' 하고 있지만, 하나둘씩 풀어주다 보면 어느새 반대로 기울어지고, 그 둘이 힘겨루기를 하다보면 균형을 이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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