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trois.
  hit : 2605 , 2013-01-16 11:15 (수)



"뭐가 그렇게 힘들어, 하나야?"
"약국 가기 싫어."
"왜?"
"학교 가고 싶어."
"왜?"


.
.


"왜 그렇게 약국이 싫냐니까?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사람들이 싫다든지, 일이 싫다든지."
"그냥 싫던데-"
"그냥?"
"응. 그냥 싫어."
"그럼 약국이 싫은 게 아니네."
"그럼?"
"학교에 가고 싶은 거네. 그리고 학교 보내달라고 때 쓰고 있는 거네."


.
.

"그러면 좀 안 돼?"
"그래도 돼. 당연히 그렇지. 당연히 학교 가고 싶지. 약국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그런데 그래서 지금 행복해, 하나야?"
"아니 괴로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내가 괴롭다는 거잖아. 어차피 한 달 남았어.
한 달 동안 일하고 학교 갈 거잖아. 그러면 그 한 달 동안 편하게 일 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그렇지."


.
.



"약국 가기 싫은 건 알아. 얼마 전에 이틀 빠져버려서 불편하지?
사람들이 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지? 욕하는 것 같고.
괜찮아. 사람들이 욕 좀 하고 나를 좀 싫어하면 어때? 
옛날에 집에서야 아빠가 나를 맘에 안 들어하면 그 날이야말로 큰 일 나는 거였지.
무슨 일이 나든지 집안이 뒤집어지든지 불똥이 날아오든지.
아무튼 위험한 일이었잖아, 누구 맘에 안 든다는 건. 
근데 지금 잘 봐. 국장님, 약사님들, 직원 분들, 모두 다 내가 빠진 '행동'에 대해서
기분 나빠 하기는 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 하나 해코지하는 사람 있니? 
까놓고 얘기해서 누가 나를 데려다 놓고 혼내기나 하냐구,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누가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있냐구?"
"아니."

"불안한 건 이해해.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만 안전하게 느끼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
하지만 눈 똑바로 뜨고 봐봐. 내가 실수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걸 안 좋게 생각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정말로 그게 그렇게 위험한 일인지.
지금까지는 그게 너무 두려워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하고,
뭐든지 다 내가 도맡아서 하려고 했었어. 
그렇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게 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하지만 하나야, 눈 똑바로 뜨고 봐봐.
지금이 아주 소중한 기회야.
태어나서 아주 오래간만에,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사회적인 관계에서 내가 실수투성이야.
그런 적이 없었잖아, 지금까지? 난 언제나 완벽한 아이였지.
내가 실수를 했고, 그래서 그 집단 안에서 눈총을 받는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말로 큰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아니면 그런 데로 살만 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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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알았어. 오늘 가서 한 번 느껴볼게."
"그래, 나는 이해해. 너무 힘들어서 시골에 내려갈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분명한 건 토요일에는 연락을 제대로 했어야 하는 건 맞아.
하지만 그것조차도 판단력이 흐려졌다는 점에는 공감을 해.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 일에 대해서 그만 신경쓰고
지금에 집중하도록 하자.
이미 지난 주인걸. 사람들도 이제 곧 다 잊을 거야."
"정말 그럴까?"
"응. 중요한 건 지금부터 어떻게 행동하느냐지. 과거를 바꿀 수는 없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오늘부터라도 실수를 안 하도록 노력해봐. 그러면 사람들도 나를 다시 볼거고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 트러블이 안 생기고, 내가 당당해지니까 내가 지내기가 편해지겠지."
"응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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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작 한 달 남았어. 다음 주에 그만둔다고 이야기하고,
복학 신청 접수 되고, 장학금 공지 나오고 그러면 이제 약국 일에 힘들어하면서 고민하는 것보다
복학 준비를 해야지.
하던 공부 마저 하고, 외모도 좀 꾸미고, 수강 신청 준비도 하고, 
어떻게 다닐 지도 알아보고, 무슨 동아리를 들지 고민도 해보고.
그렇게 산뜻하게 복학 준비를 하는 게 좋잖아.
이렇게 계속 같은 일로 고민을 해도 뭐 뾰족한 수가 없어.
어떻게든 나는 다음 달까지는 일을 할 거니까.
그래야만 등록금도 다 갚고 개강 첫 달 생활비도 버는 거니까.
나 좋으라고 하는 거잖아, 그렇지? 
누구를 위해서 해주고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우리 조금만 힘내자. D-34당."
"응응. 알았어. 오늘은 약국에서 실수 안 하기. 할 일 다 제대로 하기.
한 시에 나가니까 검수가 조금 밀리기는 할 거야.
한 시에 나가서, 밥 먹으면 한 시 반. 
그러면 4시 청소 하기 전까지 오늘 검수 밀린 거 다 끝내기.
그 다음부터는 오늘 검수 쌓인 거 마저하면서 토요일 검수 나눠서 하기.
목, 금 나눠가면서 토요일 검수 다 끝내야 하니까.
종이컵, 커피, 요구르트, 빨대, 전산봉투 등등 뭐 시킬 거 없나 확인하고
입고도 잡을 수 있으면 잡고.
물도 왔나 확인 하고.
뭐 처리할 것 없나 잘 확인하고 다 처리하고.
푹 쉬고 나가는 거니까 입력 실수 없이 꼼꼼히 확인 하고.
과장님하고 수다도 좀 떨고.
그리고 간식 먹고 여섯시 되면 청소도 하고.
검수 최대한 많이 하고. 
그러고 퇴근!
퇴근하면 집에와서 씻고, 힘들면 힘든대로 안 힘들면 안 힘든 대로
일기 쓰면서 피로도 풀고.
공부도 하고. 이것저것 복학 관련해서 챙길 거 생각하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이번 주에는 월급을 타니까 히
   생각할 시간 13/01/23
   300만 원 [6] 13/01/16
   변화 [4] 13/01/16
-  한 달
   일 가기 싫다. 13/01/16
   시나리오 13/01/15
   수고했어, 오늘도 1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