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나폴. │ 치유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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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기분이 울적해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불러내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니 마음이 정말 좋았다. 사실 개강하고 내가 외로웠던 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없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사람은 많았다. 같이 있고자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사람들 틈에 있을 수 있었다. 과방에 가도 됐고,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술자리 중 아무데나 골라 들어가도 어디든 나를 반겨줄 것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즐겁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나는 그저 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내가 이래, 저래, 하고 편하게 내 이야기를 조근조근 할 수 있는 사람. 아무한테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사람이 곁에 없었다. 1년을 쉬고 돌아오니 내 친구들은 나와 다른 학년이 되어 다른 수업들을 듣고 있어서 자연스레 만날 수가 없었다. 주변에 사람들은 많은데 오히려 그 속에서 진짜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외로웠던 것 같다. . .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만나서 이런 기분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그냥, 요즘 외롭고, 인간관계에 대해서 회의를 느낀다고. 내가 너무 '넓히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서 깊이는 신경쓰지 못한 것 같다고. 그냥 '알고만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정신도 없고 오히려 더 외롭다고. 내가 속해 있는 무리가 없는 느낌. . . 밥을 먹고 카페를 가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고 친구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다. 굳이 성폭행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부모가 이혼 했고, 이런 저런 문제가 있어서 나는 화가 난다, 이번 주에는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간다, 등등. 그냥 자연스레 아무렇지 않게 '나'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잘 들어주었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사실 굉장히 우울할 수 있는 얘긴데 내가 얘기하면 그렇게 우울하게 들리지 않는다고. 같은 얘기여도 막 우중충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아니라고. 나는 긍정킹인 것 같다고. 그냥 단지 자신이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모르겠는, 그런 부분은 있는데 막 불편하다거나 우울하지는 않다고. . . 그리고 그 친구의 몰랐던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집안일들, 그런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라며 들려준 이야기. 굉장히 고마웠다. . .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방에 돌아와서도 룸메인 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굳이 성폭행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이야기할 거리는 얼마든지 많았다. . . 그래서 지금은 참 마음이 가벼운 상태이다. 일주일 정도 나를 괴롭혔던 외로움이 많이 가셨다. 페이스북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성폭행에 관련된 생각도 많이 들지 않는다. 내일은 상담을 받으러 간다. 내일 가서는 꼭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야지. 사실 공백 기간이 길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려면 50분이 짧을 수도 있으니 적당히 잘 배분해서 이야기해야겠다. . . 오늘 참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이미지를 하나 보았다. 당신 인생에 문제가 있나요? - 예 그 문제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나요? - 예 그럼 왜 걱정하세요? - 아..? 당신 인생에 문제가 있나요? - 예 그 문제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나요? - 아니오. 그럼 왜 걱정하세요? - ..........?! 당신 인생에 문제가 있나요? - 아니오. 그럼 왜 걱정하세요? - ㅋㅋㅋㅋㅋㅋㅋㅋ . . 당신 인생에 문제가 있나요? - 예 무슨 문제인데요? -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해서 지금 너무 괴로워요. 그 문제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나요? - 예 무엇을 할 수 있나요? -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털어놓을 수 있고 고소도 할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을 정말 다 할 수 있나요? - 예. 그럼 뭘 걱정하시나요? - 아..*'_'* 당신 인생에 문제가 있나요? - 예 무슨 문제인데요? - 어렸을 때 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억 때문에 괴로워요. 그런 상처가 제게 있다는 게, 지울 수 없다는 게, 괴로워요. 장애를 안고 사는 것 같아요. 그렇군요.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하나씨를 끊임없이 괴롭히는군요. - 예. 그 문제에 대해 뭔가 할 수 있나요? 과거에 대해. - 예 무엇을 할 수 있나요? - 다시 돌아가서 행동을 달리 해야 해요. ........네? - 그 때 다르게 행동했어야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걸 지금 할 수 있냐구요. - 몰라요. 아무튼 그랬어야 한다구요! 근데 안 했다구요! 그래서 지금 다시 타임머신 타고 갈 거예요, 하나씨? - 가고 싶어요. 가고 싶어 미치겠어요. 대답해요. 갈 거예요? - 갈 수 있다면 갈 거예요. 가서 뭐할건데요? - 7살 때로 돌아가서, 엄마한테 이야기할 거에요. "엄마, 아빠가 어제 내 치마 속에 들어가서, 내 보지 먹었어." 라고. 그랬어야 했는데 안 했으니까! 또 뭐할 건데요? - 8살 때로 돌아가서, 아빠한테 이야기할 거에요. "싫어. 안 만질래. 만지기 싫어." 라고. 또요? - 9살 때로 돌아가서 내 방에 들어온 아빠더러 나가라고 할 거예요.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소리지를 거예요! 아빠를 발로 찰 거예요! 또? - 10살 때로 돌아가서 수요일에 집에 오지 않을 거예요. 엄마한테, 학교 선생님한테, 경찰한데 다 말 할거예요. 아빠가 자꾸만 수요일에 학교 일찍 끝나면 집에 오라고 한다고. 그래서 내가 가면 내 옷을 벗기고, 가슴을 빨고, 막 아픈데 자꾸 자기 거 집어넣고 막 안에다가 하얀 것도 싸고 그런다고. 다 말 할 거예요! - 14살 때로 돌아가서 집을 나갈 거예요! 싸우다가 집나간 엄마 찾으러 갈 때, 아빠가 나한테 '너도 좋았잖아. 왜 말해서 이 사단을 내냐고'라고 했을 때, "이 미친새끼야 내가 언제 즐겼어" 라고 해줄 거예요! 싸대기도 때려줄 거예요! - 15살 때로 돌아가서 여름 방학 때 아침에 아빠가 내 방에 들어오기 전에 도망갈 거예요. 침대에 누워 있지 않을 거예요. 아빠보다 일찍 일어나서 집을 나갈 거예요! 엄마보고 출근하지 말라고 떼 쓸 거예요. 동생보고 나 좀 도와달라고, 아빠 좀 말려달라고 소리 지를 거예요! - 16살 때로 돌아가서, 내가 아빠가 안아보게 해달라고 했을 때 싫다고 했다고, 나를 막 화장실에 밀쳐서 넘어뜨리고 '죽어!!'라고 소리지르면서 나 때렸다고, 엄마한테 다 이를 거예요. 아빠가 막 엄마한테 휴지통 벽에다가 깼다고, 그래서 자기만 다쳤다고 거짓말 할 때 '아니야! 내 머리에다가 깼다고! 아빠가 나한테 전화해서 안아보게 해달라고, 막 그래서 내가 싫다고 그랬더니 집에 들어와서 나 막 때렸다고!' 라고 엄마한테 이를 거예요! - 내가 TV 소리 시끄럽다고 했다고 아빠가 막 리모콘으로 나 리고, 어린 동생 보는 데서 막 발로 밟고 그랬다고 엄마한테 다 이야기할 거예요! 그리고 엄마한테도 막 화낼 거예요. 엄마는 왜 맨날 혼자 집 나가냐고! 엄마 나가면 나 맨날 맞는다고, 제발 나가지 말라고. - 집안 어른이 돌아가셔서 엄마랑 동생이랑 어디 갔을 때 아빠가 집에 와서 나를 막 안방으로 데려가서 눕히려고 했을 때, 그 때로 돌아갈 거예요. 내가 막 미친 척 하고 발작하는 척 했는데, 이러면 깜짝 놀라서 나를 놓아줄까, 그렇게 연기했는데 막 '얘가 왜이래?' 하면서 눈도 꿈쩍 안 할 때로 돌아가서 도망 갈 거예요!! - 그 로 돌아갈 거예요. 다 돌아가서 다 도망 가고 다 욕해주고 다 때려줄 거예요. 다 엄마한테 이를 거예요!! 할 수, 있어요? . . - 하고 싶어요. 대답해요. 할 수 있어요? - 하고 싶다고요. 할 수 없어요. 이미 지난 일이에요. - 못 해요? 네. 못 해요. - 왜 못 해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 보내주세요. 나는 못 해요. - 보내주세요. 가고 싶어요. 못 가요. 알잖아요? - 왜 못 가요. 가면 되잖아요. 어떻게 갈 건데요? - 어떻게든요. . .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어요. - 갈 거예요. 가야 해요. 안 가면 안 되요. 가고 싶은 거 알아요. 가서 다 고치고 싶은 거 알아요. 하지만 못 가요, 하나씨. 인정해요. - 싫어요. 갈 거예요. . . - 갈래요, 갈 거예요, 가야 되요. 불쌍한 하나 구해주러 가야되요. 너무 불쌍하잖아요. 너무너무 불쌍하잖아요. 빨리 구해주고 싶어요. 구해주러 가요. 구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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