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지난 이야기
  hit : 2547 , 2013-05-29 21:21 (수)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을 하고,
 조금 여유롭게 퇴근한 날에는 어김없이 나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을 나선다.
 조금 멀리 떨어진 체육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또 한시간남짓 걸어서 집까지 들어온다.

 집근처에 다왔을때쯤, 전화가 울린다.

 어디에요? 나 퇴근하는데.
 
 이 남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일할땐 별 감흥없이 서로 업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퇴근 후의 시간에는 자꾸 신경이 쓰인다.

 운동하고 들어가는 길입니다.
 음, 그러니까 어디?
 여기 성당 앞.
 거기 위에 사거리쪽으로 와요, 저 다 와가요.
 
 됐다고, 그냥 집에 들어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걷다가
 이내 방향을 바꾼다. 미쳤지, 나도.
 50미터 앞, 이 남자의 차가 보인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 잠긴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서 올라탄다.
 
 항상 이시간에 운동해요?
 일찍 퇴근하고 여유있으면요.
 그렇군. 커피한잔할래요?
 그래요, 그럼.

 근처 대학교로 들어간다.
 문 닫은 카페들만 있어서, 대학교 건물 내의 자판기 커피를 뽑아든다.
 밤공기가 제법 좋다.
 캠퍼스 잔디밭 구석구석, 환한 소리들이 들렸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캠퍼스의 낭만을 꿈꾸리라. 
 
 역시 저들은 젊어서 좋네요.
 진아씨도 젊잖아요?
 회사에선 그런 편이지만, 아직 20살이고 싶어요. ^^
 그래도 아직 20대니까.
 
 바람이 불고, 건물 담벼락에 서서 야경을 바라본다.
 나는 말문을 열었다.

 왜, 내가 좋아요?
 말했잖아. 길가다 좋은 음악 들은것처럼, 확 다가오는거요.
 말도 안돼..
 궁금했어요, 그냥. 어떤 사람인지. 이것도 말했잖아요?
 S씨, 누가 그러던데, 남자들은 다 똑같다던데.
 다 똑같겠죠. 나는 다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네요. ^^
 솔직해서 좋네.
 좀 걸을래요?


 
 캠퍼스 곳곳을 걷다보니, 전통찻집이라는 한옥이 나온다.
 계단을 올라서, 잔디가 깔린 마당, 그리고 한옥 안채 건물들을 돌고돌아 걸었다.
 예쁜 가로등, 조명. 그리고 잔디밭.
 조그만 풀벌레소리. 그리고 숲속에서 들리는 새소리들.

 와. 좋다. 덕분에 이런데를 다 오네요.
 저도, 처음 와봐요.
 
 바스락바스락 조금 떨어져 걷는데, 앞서 걷던 이 남자
 갑자기 팔을 벌린다.
 
 자요, 팔 빌려줄께요. 팔짱.
 됐거든요. 사람 쉽게 보네?
 
 머쓱하게 웃으며 또 한참을 걷다가 이번엔 손을 내민다.
 
 미쳤지.
 머뭇거리다 잡은 나는 또 뭐야.
 
 생각보다 따뜻하고 부드럽다.
 장비를 만지고 제품을 만지고, 일할땐 그렇게 크고 투박해보였는데.

 10미터쯤 걷다가 나는 손을 놓는다.
 정말.
 정말 아무 감정도 없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뛰기시작한다.
 긴장이 되고, 모든 신경이 이 남자에게로 향한다는걸 느꼈다.

 왜요?
 아니. 아니에요, 한 1미터쯤 떨어져걸어요.
 왜?
 그냥. 빨리.
 
 나는 주춤주춤 거리를 두며 걸었다.
 앞서가던 이사람은 뒤돌아서 나를 보며 말했다.

 이리와봐요. 한번 안아보게.
 싫어요.
 이리와봐, 안아봐요.
 싫다니까;;
 어허. 내가 직급이 좀 높죠? 
 스카웃되서 왔으니까 그렇지 내가 짬밥은 훨씬 많을텐데?
 이리와봐요, 궁금해. 키가 얼마나 되는지, 안아보면 얼마나 좋을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내게
 안는게 뭐어때, 하며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안는다.
 
 부드럽게 살포시 안았다가 다시 내 얼굴을 한번 보고,
 힘껏 나를 안는다.
 내 어깨 위에서 이 남자의 숨소리가 들린다.

 키가 정말 크네요. 그리고 안으니까 너무 약해보여, 진아씨.
 무,무슨소리 해요?
 키도 크고, 일할때보면 강해보였는데, 안으니까 이렇게 약하고 여리잖아요.
 
 이사람, 다시 한번 나를 바라보다가 또 꼭 껴안는다.
 그리고 토닥토닥, 등을 쓰다듬는다. 
 


 무슨 정신으로 남은 거리를, 세워져있는 차까지 걸어왔는지,
 잘 모르겠다.
 







 다음날, 변함없이 나는 출근을 했고,
 측정의뢰가 들어온 제품을 챙기고, 도면을 챙기고,
 업체들과 씨름했다.
 변함없이 S씨도 일을 했다.
 달라진건 눈이 마주칠때마다 S씨는 웃었고, 나는 눈길을 피했다.
 큰일이다.
 심장이 멋대로 뛰기시작한다.



 


 그러는동안, 너에게 뜸해진 나를 느낀다.
 네 생각을 하는 시간을 쪼개, 나는 이남자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있다.
 나도, 이 남자가 점점 궁금해진다. 
 
 금요일.
 니가 내려오는데. 나를 만나러.
 내려와서 나 좀 꽉 잡아놓고, 다시 눈에 콩깍지 확 씌워놓고 가라. 제발.
 으아.아.아.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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