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아 복잡해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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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돌아왔다. 정말 신기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자마자 전구가 켜지듯, '외로움'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느낌이 몸의 윗부분 어디선가에서부터 스며나오기 시작했다. . .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필리핀의 그 작은 마을에서 지낼 때는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스무 명 남짓 되는 한국인들밖에는 없고 나머지는 다들 태어나서 처음보는 필리핀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아는 사람 천지인 한국에 돌아오니 심지어 가족까지 있는 곳인데, 외로움이 피어 올랐다. 도대체 왜일까, 그 곳과 이 곳은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이 곳에서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외롭지 않으려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곳에 가야 하는 걸까. 외롭지 않을 수 있는 환경, 으로. . . 확실히 몇 번의 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외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충분히 이보다 덜 외로움을 느끼며 살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외롭다는 말로 나의 외로움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한 줌의 외로움도 깃들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외롭지 않고 안정감 있는 그런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겪었기 때문이다. 환경, 의 영향이 가장 크다. 나는 그대로인데 내가 있는 장소가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나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고, 외로움을 느꼈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변수만을 놓고 보았을 때는 그렇다. . . 작은 마을이 주는 단순한 삶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알고 있는 그런 관계성이 주는 안정감. 인터넷이 되지 않음으로서 행동반경과 고려반경이 일치하는 곳. 도시는 내가 갈 수 있는 곳보다 더 멀고 넓은 영역을 고려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우리 집에 있지만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공간은 여기서부터 필리핀까지다. 잠재적 행동 반경이 심하게 넓어지고 그 넓은 곳 안에 나는 홀로 존재한다는 느낌 때문에 외롭고 무서운 것이다. 생물이 넓은 영역에 혼자 있는다는 것은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지금의 상태와는 다른 상태가 내게 필요하다. 내가 속한 영역을 줄일 필요가 있고 조금 더 견고한 관계에 속할 필요가 있다. 생존 확률을 높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 . 아주 본질적인 것으로의 회귀. 가장 단순한 그곳. 一 단 하나에 가까운. . . 도시엔 많다. 무엇이든지 많다. 사람도 가능성도 할 일도 감정도 생각할 거리도 필요한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필리핀에서는 할 수 있는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니 어두워지면 가족들하고 이야기하다가 자든지 손으로 뭘 쓰든지 할 뿐이었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떠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을 붙잡고 인터넷을 사용한 일이었다. 누워서 티비를 보다가 컴퓨터를 하러 들어왔다. 아마 이 모든 것들이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바깥에 나가든지 손으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붙잡았겠지. 하지만 할 수 있는 이상 하지 않기는 힘이 든다. 그런 면에서는 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부러워진다. 나는 어째서 하지 않을 수 없는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참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차라리 이 모든 것들이 없는 곳에서 사는 것이 편하다. 없다고 해서 불편하지는 않으니까. 그냥 없으면 안 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있으면 하게 되는. 그러니까 없으면 안 할 수 있는. . . 삶을 단순화시킬 필요성을 느낀다. 거창한 꿈 같은 것도 필요 없다. 많이 가질 필요도, 많이 누릴 필요도 없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할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는 않는다. 본질적인 부분만 건드려주면 된다.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들만 잘 지니고 살면 그걸로 됐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 필요도 없고 너무 많은 것을 느낄 필요도 없다. 내가 행복할 수 없다면 다 부질 없는 것들이다. 환경이란 것은 참 사람을 강하게 결정 짓는다. 내가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도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이제 있는 힘껏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 단순. 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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