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ease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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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정상의 범주 안에 두지 않기로 했다. 제대로 인격이 형성된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아빠는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아빠 같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정상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어차피. 다수인게 정상인 거야. 아빠는 소수다. 소수의 사람인 그를 다수의 기준으로 아무리 평가하고 재단하고 이쪽으로 끌고 오려고 해봤자 되지 않는 일이다. . . 그렇게 생각해놓고 보면 더 이상 매달릴 이유도 없다. 그러니까 나에게 했던 행동 자체에 대해서는 백번 화를 내도 마땅하지만 '어떻게 아빠가 그럴 수 있어' 라는 울부짖음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는 뜻이다. 내가 백 번 그 사람한테 아빠 노릇을 하라고 말해봤자 그 사람은 자신을 아빠 이전에 자기 자신으로 본다. 나한테 그 사람은 아빠로 다가왔고 아빠로 같이 살았지만 그 사람한테 자기 자신은 아빠이기 이전에 한 남자였고, 한 개인이었다. 아빠라는 틀 안에 가두어놓고 평가해봤자 괴로워지는 것은 나일 뿐이다. 여기서는 풀어주자. 아빠따위는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냥 '나를 성폭행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성폭행한 나쁜 아빠'가 아니라. 더 이상 아빠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서 '어떻게 아빠가 저래' 라고 억울해 하는 것도 참 웃긴 노릇이다. 아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나쁜 아빠,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 . 나한테는 아빠가 없다. 왜냐하면 아빠가 될 사람이 아빠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없는 아빠더러 아빠가 되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으니 내 목만 아프고 그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아빠에게 울부짖을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 대해 화를 표현하면 그 뿐이다. 나 자신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불쌍한 딸이 아니다. 스스로를 불쌍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다. 응. 넌 나에게 똥을 줬어, 이 새끼야. 싸대기를 한 대 맞아야지, 그럼. 그냥 이렇게 덮어두고 지나갈 순 없지, 암. 뒷통수 조심하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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