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득 찬 마무리, 그리고 시작.   trois.
  hit : 2813 , 2013-12-31 17:51 (화)


오늘은 2013년의 마지막 날이며,
3개월 동안 일해왔던 곳을 그만두는 날이기도 했다.

어제 점심시간에 같이 나가서 밥을 먹으면서 송별회도 해주셨고,
선물까지 해주셔서 정말 감동이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내가 조그만 쿠키를 사가서,
작은 쪽지와 함께 선생님들께 드렸다.

3개월 일했는데,
아쉬워 해주시고,
곧 다시 만나자고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이뤄지는 현장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런 일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과 함께 일해보고,
거기에 돈까지 받았던 지난 3개월은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여기에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덜 힘들 수 있었던 것 같다.
만약 고소를 하는 상황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거나,
다른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상태가 안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직장에서는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오히려 재밌기까지 하니까,
정말 좋았다.



.
.


어제는 나와 같은 생존자분들과 만나서 송년회를 열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신이 겪은 이야기,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꿈 등을 나누면서
정말 좋은 시간을 가졌다.

나의 꿈도 이야기했다.
나는 성폭력 생존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단체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그리고 생존자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목표라고.

혼자만 갖고 있던 생각들을
이 생각에 깊게 공감하는 사람들과 나누니까,
정말 좋았다.

나는 정말 저런 일들을 하고 싶다.
그래서 일단, 이번 여름에는 아프리카에 갈 것이다.
뭐 굳이 아프리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번 여름에 치유 여행을 떠난다는 게 나의 목표다.

배낭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봉사활동이 될 수도 있고,
그 둘 다가 될 수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갈 수도 있고
혼자 갈 수도 있다.

어쨌든 분명한 건,
나는 이번 여름에 한국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7월이나 8월 중에 출국할 예정이다.
그러면 또 돈을 모아야겠지!

그리고 2학기에는 복학을 할 예정이다.
복학을 해서 사회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해서,
스트레이트로 졸업을 해야지.
졸업 후에 정확히 무슨 일을 할 지는 또 살아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학교를 때려치고 몸을 바칠만한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학교를 졸업해야 할 수 있는 일들이 더 하고 싶으니까.
학교는 졸업하기로 결심했다.


이번에는 큰 말하기 대회도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주제로 한 소설도 써볼 생각이다.
소설을 쓰지 않게 된 지는 몇 년 된 것 같다.
이것도 일부러 끊었는데,
요즘 들어 다시 쓰고 싶어졌다.

'술래잡기', 나 '쌍둥이'쯤의 제목을 생각해두고 있다.
내가 두 명인 것처럼 느껴졌던 날들에 대해서,
실제로 두 명의 나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볼 생각이다.



그리고 3월에는 엑셀 자격증도 딸 것이다.
곧 아르바이트도 다시 시작해서 돈을 모아야겠지.



.
.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지만
하라고 하면
원없이 하다가 자기가 알아서 멈추는 것처럼,

나 역시
성폭력에 집중하는 일에 대해 죄책감이나 의구심을 갖고
자꾸만 하지 않으려고 하면 평생 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너는 더 예쁘게 살 수 있어'라거나
'굳이 거기에 매몰돼 있을 필요는 없잖아?'
라는 주변의 말에 흔들려,
그동안은 성폭력 경험에 집중하려는 나 자신을 자꾸 뜯어말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려고 한다.
실컷 하고 나면 질려서라도 그만하겠지.
평생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할 수 있는 거 다 하고 나면,
하고 싶은 만큼 다 하고 나면,

그 때가 되면
누가 하라고 해도 관심이 없을 만큼
놓여날 수 있을 테니까.



.
.



그러니까 치유 여행,
오늘부터 시작이다:)
2013년은 마무리 되지만,
다시 2014년이 시작된다.



시작,
나를 위한 치유여행!
콩쓰  14.01.01 이글의 답글달기

사복과 휴학중이시군요 저도 사회복지과 나왔는데 비록 전공은 멋 살렸지만..ㅠ 글도 잘쓰시고 치유여행 좋은 결심 하신 거 같아요. 파이팅.!하시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아빠 면회 [8] 14/02/06
   움직이는 쓰레기봉투 14/01/10
   열쇠는 나 14/01/04
-  마음 가득 찬 마무리, 그리고 시작.
   성폭력 후유증 Report 2(2013.12.29) 13/12/29
   망망대해 [2] 13/12/29
   물고기와 물 [4] 13/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