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지난 이야기
  hit : 2400 , 2014-04-15 11:19 (화)
 몇달만에 친구를 만났다.
 나를 가장 잘 알고있는 친구. 그래서 내게 언제나 제거대상 1호가 되는 친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연애사를 듣더니 한숨을 내뱉는다.
 
 왜. 외롭냐?
 외롭긴한데, 겁도 나지.
 겁은 왜 나?
 야, 우리가 서른인데, 아무나 막 만나서 될 일이 아니잖아.
 뭐어때, 그렇게 조심해서 만나면 뭐가 달라?
 만났다가 정주고 또 헤어지면, 난 한 1년은 힘들어할텐데 또 준비해서 또 사랑하고.. 그럼 나이가 몇이냐?
 
 그래. 우리가 벌써 그럴 나이가 되었구나..
 
 피자집에 앉아서 3시간가량 수다를 떨고,
 우리 이만하면 진상손님이겠지? 하며 거리로 나와 서점으로 향한다.
 지난 몇달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독서밖에 없어서..
 서점의 신간코너에 가도, 거의 다 읽은 책들뿐이고.
 음악이든 책이든 약간의 편식을 해서 취향에 안맞으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난 가을-겨울동안 나는 다시 김유정의 소설을 읽고.
 또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으며 계절을 보냈다.
 사랑하는 사람과 도망치듯 제주에 살면서 그 3개월의 시간이 가장행복했노라 말할 수 있는.
 잠에서 깨어나 옆에 잠든 당신을 보면서
 행여 나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당신도 깰까봐 숨죽이며
 당신의 가지런한 속눈썹을 바라봤던.
 창 밖에 토독토독 떨어지는 빗소리가 사월에서는 미였다가- 칠월에는 솔까지 올라가더라는.
 

 내 겨울이 그랬다.
 
 나는 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산에 갈래, 바다에 갈래? 라고 물으면 주저없이 바다,라고 대답을 했고
 남들보다 좋지 않은 심장때문에 지구력도 떨어지고 호흡도 떨어져 등산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난 당신을 만나면서 산에 올랐다.
 답답해하며 산에 가고싶다, 라는 말을 연발하던 당신에게 내가 먼저.
 이번 여름휴가엔 산에 가자. 2박3일로.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나를 보며 어디? 라고 묻는 당신에게
 내연산. 포항에 있대, 보경사 구경도 하고 등산도 하고 계곡 트래킹도 하고, 바로 앞엔 바닷가고.
 그렇게 해서 나의 첫등산이 당신과 함께였다.
 헉헉, 거리며 34도가 넘는 온도에 산을 오르고, 정상에서 김밥을 먹고.
 내려오는 길은 계곡을 따라 폭포를 따라, 물놀이도 하면서.
 입고간 등산복이 계곡물에 다 젖을 정도로 수영도 하고.
 다 내려와선 그대로 해수욕장에 들어가 파도를 타고.
 등산과 수영을 좋아하는 당신.
 나는, 그때 바다에서 그렇게 웃는 당신모습을 처음 봤다.
 그렇게 매달 이곳저곳 가까운 산을 다녔다.
 그리고 겨울.
 
 산이라면 역시 눈산이지.
 눈산? 눈오는데 산에 간다고?
 니가 안가봐서 그렇지, 가봐.. 빠지게 돼. 내 첫산행이 눈산이었어, 소백산.
 
 그렇게 나는 또 계절이 바뀐 덕유산 눈꽃산행을 나섰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주말.
 무주에는 이미 많은 눈이 왔다고, 산객들이 이야기 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봤지만, 당신은 되려 그 소리에 기분이 좋은듯했다.
 러셀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눈이 오지않았다면 2시간, 2시간반이면 도착할 정상에,
 우리는 5시간이 걸렸다. 물론, 절반이상 지친 나때문이었지만.
 내려올때는 꼭 곤도라를 타자고, 스키장으로 내려가서 버스타고 다시 돌아오자고
 확답을 얻고서 대피소에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피소 안에서
 당신은 빈자리를 찾아, 버너와 코펠을 꺼내 라면물을 끓인다.
 모든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장갑이 젖어 손가락이 얼어붙은 나는
 너무 춥다며 가져온 하드쉘을 입고도 모자라 당신 옷까지 덮어쓰고 동동동 발만 굴렀다.
 주변 산객들이 당신을 보고, 참 다정하다고, 이런 남자를 둬서 좋겠다고.
 연인끼리 이렇게 산행하는거 너무 좋다고. 어디서 왔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당신을 바라본다.
 곤도라를 타고 내려가자고 다짐했는데, 이내 정상의 절경에 나는 빠져버렸다.
 설국.. 백색의 눈밭과 정말 구름하나 없는 새파란 하늘.  
 시선을 옮기는 곳곳마다 피어난 하얀 눈꽃들. 
 
 우리 걸어서 가자.
 응? 곤도라 타자며- 안 힘들어? 내려가는게 더 힘들어.
 괜찮아, 너무 좋아, 회복됐어. 그냥 내려가자, 걸어서. 
 
 씨익-웃으며 당신이 앞장선다.
 미끄러지면 미끄러지는대로 당신이 잡아끌면 잡아끄는대로
 눈밭에 발자국을 남기며 그렇게 내려오니 4시간이 걸렸다.
 
 숙소에 들어가 언 몸을 녹이고, 쥐가 난 왼쪽 다리를 당신이 주무른다.
 평소보다 오래 산을 탄 까닭이다.
 
 오늘 힘들었지?
 아니, 힘들긴한데- 진짜 좋았어. 왜 사람들이 눈산눈산, 하는지 알겠어.
 그치? 눈산에 한번 빠지면 다음 겨울이 될때까지 못 잊고 또 와.
 
 그렇게 당신과 나는 담요 두개를 덮고 잠들었다.
 새벽에 잠깐 잠에서 깼는데, 당신이 곤히 잠들어있다.
 뒤척이면 당신도 깰까봐 꼼짝도 않고 당신을 바라본다.
 까만눈썹, 긴 속눈썹, 예쁜코, 앙 다운 입술.
 까맣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살며시 쓸어내려본다. 미동이 없다.
 잘자는구나- 하며 당신 품에 더 안겨서 눈을 감는다.
 밖에서 눈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다.






 그날 새벽에 무주에는 30cm 이상의 눈이 더 내렸다.
 돌아오는 길이 힘들었지만..
 눈산은 정말- 매력적이었다. 
 



 당신에게 산에 가자, 라는 말을 한다.
 좋지~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난 그 웃음이 좋다.  
 이번 여름에는 같이 산 아쿠아 트래킹화를 신고
 또다시 계곡을 걸으며 여름을 보내고싶다.
 하얀 피부가 까맣게 타버려도 괜찮겠다.
 당신이 웃는다면.


 당신을 만나는동안 사계절이 다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 처음 맞는 봄이고, 이 봄날을 걷고있다.
 다가올 시간들을 준비하고 감사해야지.. 
 
 아.
 친구와 함께 간 서점 지하 문구코너에서 편지지를 샀다.
 간밤에 예쁘게 (?) 써내려서, 오늘 아침 출근길-
 우체국으로 직접 가 발송을 했다.
 

 당신께도 무사한 봄날이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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